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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동의 사람·사이-소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긴버전)]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면…잘 키워야 한다는 마음을 버리세요

서의동 2017. 2. 28. 14:52

※2월25일자 지면에 실린 인터뷰보다 좀 더 긴 기사입니다. 


아이 키우기만큼 한국인을 괴롭히는 문제가 또 있을까. 첫돌 갓 지난 아이를 사교육 시장에 내보내는 부모 마음도 그리 기꺼울 것 같진 않지만, ‘내 아이는 사교육 안 시킨다’고 결심한 부모들도 편한 마음으로 일상을 보내지는 못한다. 먹고살기 바빠 사교육은커녕 아이 얼굴 제대로 보기 어려운 가정도 숱하다. 아이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 ‘총력육아시대’지만 어른이 되기 싫은 아이도 그만큼 늘어나는 혼돈상태다. 잘 키워야 한다는 부모의 조바심이 지나치다보니 아이가 ‘감정의 하수구’가 되기도 한다.  

 

‘육아멘토’로 통하는 소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행복한아이연구소장(48)은 아이 키우기에 대해 ‘쾌도난마’의 해법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꾸준한 관찰과 대화로 필요하면 진단을 조금씩 수정해가며 아이의 마음을 읽어내려 애쓴다. 누구든 육아에 정답을 가질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서천석은 방송과 강연, 소셜미디어를 통해 육아와 사회문제에 대해 활발히 소통해왔다. 공동육아를 직접 조직하고, 교사모임을 만들어 학교 울타리 속 아이들의 상태를 살펴보는가 하면, 촛불집회에 나가기도 한다. 육아의 바탕에 사회문제가 있는 만큼 그의 관심범위는 사회 전반으로 진화하고 있다. 

 

지난 15일 경향신문 편집국에서 서천석을 만나 아이들과 부모 및 교사, 한국 사회가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부모가 아이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리는 ‘겸손한 육아’가 필요하다”고 했다. ‘잘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지 않으면 아이와 부모 모두 불행해진다고 본다. 대신 공동체 속에서 아이를 키우는 환경을 정부와 사회가 궁리하고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동체 복원을 돕는 인력을 마을에 두는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했다.   


사진=박민규 선임기자


■“부모가 행복하지 않으니 아이들도 불행하다” 

- 강연이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회적인 발신을 적극적으로 하는 편인 것 같다.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전부터 주변 사람들과 이런 이야기를 해오다가 소셜미디어가 생기면서 거기에 생각을 썼을 뿐인데 좀 알려지다 보니 사회적 발언을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다. (방송에도 자주 나가지 않느냐) MBC 여성시대에 <우리 아이 문제없어요>라는 코너를 만 7년 했다. JTBC 방송 출연도 소아정신과 의사로서의 컨셉이다. 근데 사회문제가 아무래도 육아나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치니, 그런 점에서 사회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긴 하지만 실제 활동은 적은 편인 것 같다.” 

- 한국사회에서 주요한 관심사가 아이문제인데, 그 중요성에 비해 정답은 잘 안보이는 것 같다.

“한국사회가 아이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아주 최근의 일이다. 육아서가 본격 출간되고 방송에 육아전문가들이 나오게 된 게 1990년대 초반부터이니 25년쯤 된 거다. 민주화투쟁으로 87년 체제가 성립되고 이후 노동자 대투쟁, 분배·복지 확대로 민주주의가 이행되는 과정에서 개인의 욕구도 중시되면서다. 아이를 중시하는 문화를 접한 이들이 부모가 된 첫 세대여서 아직 육아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지 않은 것 같다.”

- 한국의 아이들이 불행하다는 건 국제비교로도 알 수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부모가 별로 행복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부모들은 자신의 불행한 감정을 저도 모르게 아이에게 던지게 된다. ‘인생 사는게 얼마나 힘든줄 알아? 지금 그래 갖곤 안돼’라며 자신의 불안을 아이에게 여과없이 전달하는 거다. 만약 70~80년대나 90년대 초반에 조사했더라면 지금처럼 불행감이 높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면 그때 부모세대들은 살면서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이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 성장하던 시대이기 때문인가.  


“그렇다. 집에 칼라TV도 생기고, 자가용도 사면서 ‘내가 점점 나아지고 있구나’는 행복감을 가질 수 있다. 당시엔 고용사정도 나쁘지 않아 부모의 마음풍경이 그리 어둡지 않았고, 아이들도 그런 부모를 보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했다. 하지만 요즘 진료할 때 초등학교 3~4학년에게 물어보면 ‘어른이 되고 싶다’는 아이가 10명에 1명 꼴도 안된다. ‘왜 어른이 되고 싶지 않냐’고 물으니 ‘엄마, 아빠 사는게 힘들어 보이고 의무와 책임만 많지 재미없어 보인다’고 하더라. 아이가 힘들다고 하면 부모는 ‘엄마는 더 힘들다. 앞으로 더 힘들어진다’고 반응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거다.”


- 선진국에서도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나.   


“근데 선진국은 우리보다는 계급분화가 돼 있지 않나. 영국은 노동자들 사는 지역이 별도로 있고 거기선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안정성’ 같은게 있어서 좀 다르다. 행복을 멀리서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족중심적이 되고 현재의 삶을 잘 누리려 한다. 우리도 어차피 멀리서 행복을 찾기가 쉽지 않으니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노동시간도 줄이고, 저녁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움직임도 이런 맥락이라는 생각이 든다.”


- 한국 사회는 더 힘들어 보인다. 


“우리는 신자유주의가 뿌리를 내리는 시기와 저성장이 겹쳐 버려서 더 힘들다. 미국은 60년대에서 90년대 초반까지 육아에 들이는 시간과 투자가 점차 줄어들다가 90년대 이후 새로운 불평등 시대에 진입하면서 다시 급격히 늘어났다. 그전까지는 사회가 대단히 잘살진 못해도 어느 정도는 살 수 있고 분배도 비교적 이뤄졌기 때문에 노력을 많이 하지 않았다. 우리 부모들은‘욕망을 버리고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며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는 생각과 ‘아이를 경쟁력 있는 인적자원으로 성장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을 동시에 느낀다. 이 두가지를 생각하다 보니 부모가 지치게 된다. 이런 힘든 감정이 아이에게 전달되고 있는게 우리 모습이다.” 

 

서천석은 “육아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부담감”이라고 했다. “부모가 아이와 만나는 순간에 충실해야 하지만 ‘잘해줘야 한다’는 부담 탓에 오히려 아이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그러면 아이는 바로 알아챈다. ‘나에게 관심없다’고 생각하니 반항심이 생기고 일이 꼬인다.”

 

- 다른 나라 부모들도 비슷한 고민들 하고 있는가.  


“외국 육아서적이나 논문들을 보면 최근 들어 비슷하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든다. 독일에서도‘번아웃키즈’라는 말이 등장했다. 미국에 엄마들이 모이는 블로그를 보면 그 하소연이 우리와 거의 차이가 없다. ‘아이들이 공부하느라 힘들고 지친다’ ‘이렇게까지 키워야 하나’는 식이다. 육아고민의 세계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 예전보다 아버지들이 자식과 친근해진 것 같은데도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거네? 


“예전에 비해 아버지들이 훨씬 노력하는 건 사실이지만 아이들에게 잘해주면 아이들은 ‘나도 나중에 하고 싶은거 참으면서 아이를 챙겨야 하나’라고 생각한다. 또 부모들이 ‘아빠가 널 위해서…’라며 은근히 표를 내기도 하지 않나. 커갈수록 ‘나도 나중에 이래야 하나. 너무 힘든데’싶은 거다. 예전엔 결혼해 부모가 되는걸 당연시했지만 요즘은 조금 자유가 넓어져 비혼도 선택지가 되고 있다. 부담을 지지 않으려고 (결혼·출산을) 안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거다.”


- 어릴 적에는 땀흘려 뛰어노는게 중요한데 요즘 아이들은 게임이나 웹튠으로 시간을 보낸다. 


 “도시환경이 변했을 뿐 아니라 아이들에 대한 부모 관심이 늘어났다. 그래서 아이들이 위험해질까봐 밖에 내놓기가 쉽지 않다. 부모가 함께 나가서 봐주는 것도 힘드니 어지간하면 나가지 말라고 한다. 게임은 다칠 위험이 없으니 부모도 안심한다. 아이들이 ‘가상 공간’으로 쫓겨난 것이다. 요즘 아파트는 부모감시가 가능한 놀이 공간이 있어 좀 낫지만 단독주택이 많은 저소득지역의 경우 부모가 일하느라 방치된 아이들이 집 안에서 게임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 소득격차가 아이들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미치는 거다.” 

 

- 사회의 관심도 중산층이 많은 서울 강남이나 목동지역 아이들 문제에 집중돼 있는 것 같다. 저소득층 아이들은 관심의 사각지대에 있다. 


“실제로 아이들이 사교육에 지나치게 시달린다는 보도가 나오지만 그 정도로 시달리는 아이들은 다수가 아니다. 절반 이상의 아이들이 부모가 보살피지 못하고 방치된 채 자란다. 그 아이들을 위해 신경써야 하지만 언론보도도 많지 않다. 평균적인 아이들의 삶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에 정부가 관심을 갖고 투자해야 한다.”

 

- 소외지역 공부방 지원사업 등도 있지 않았나. 


“지자체마다 아이들을 위한 시설이 생겨나고 있지만 아이를 데리고 올 여력이 있는 이들만 혜택을 본다. 일 때문에 이용할 수 없는 가정이 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인력투자가 필요하다.”

 

- 결국 사람이 해야 할 일인데. 


 “부모가 경제적으로 힘들거나 삶이 빡빡한 경우엔 시야도 좁아지고, 동시에 여러가지를 생각하기 어렵게 된다. 하지만 살짝만 가르쳐줘도 ‘아 그렇지’하고 실천에 옮기게 된다. 미국에서 저소득층에게 저축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문자메시지만 보냈을 뿐인데 저축률이 10%포인트가 올라갔다는 통계도 있다.”


■잡무에 치여 아이를 못 챙기는 교사 


서천석은 학교 안 아이들과 교사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아이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는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집중할 수 없도록 만드는 학교행정에 대해 비판적이다.  


- 아이들에게 중요한 건 학교인데 교육투자는 늘어났지만, 정작 교사들이 아이에게 집중하기 어려운 문화가 있다고 한다.  


“교사 개인의 능력이나 의지는 과거 어느 때보다 높은 편인데도 학교에 들어와 금방 망가지는 것 같다. 젊은 교사들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보통의 직장이라면 일하는 과정에서 점차 책임감과 철학이 생기고 성장하게 마련인데 교사사회는 그런 성장이 잘 안이뤄지는 것 같다.” 

 

- 구체적으로 어떤 걸 가리키나. 


“교육철학을 다진다든가 교육기술을 연마한다든가 하는 걸 개인에 맡겨버리는 식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다행이지만, 안해도 내버려둔다. 교육당국은 어떻게 교사를 성장·단련시키고 아이 교육에 자긍심을 갖게 할 것인가에 가장 신경써야 한다. 교육자치가 본격화된지 꽤 됐지만 교사들이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없다. 아이들이 행복을 느끼려면 교사의 상태가 좋아야 하는데 그 문제에 교육당국의 관심이 없다. 심지어는 교사들이 학교현장에서 무시당하고 상처받는다고 생각한다.” 

 

- 무시받고 상처당한다?


“예를 들어 4~5년차 교사들이 어떤 학교에 전근을 가면 가장 어려운 부장보직을 덥썩 맡겨 버린다. 막 전근와서 학교사정도 잘 모르는데도 개의치 않는다. 젊은 교사를 어떻게 성장시켜 아이에게 도움이 되도록 할 건지에 대한 고민이 관리자에게 없는거다. 폭력적인 방식이지만 항의할 수도 없다. 교사들이 존중받고,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아이들에게 전가된다.” 

 

- 학교가 학생들에 애정이 있다면 그렇게 중요한 일을 신참에게 맡기지는 않을 거 아닌가. 


“젊은교사 모임에 가보니 어떤 교사가 ‘4학년을 한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데 학년부장과 과학부장 보직을 한꺼번에 맡게 됐다’고 하더라. 처음엔 선의가 있던 교사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의욕을 잃고 실력도 쌓지 못한다. 교육개혁의 핵심은 수업을 바꾸는데 있다. 교사가 아이를 만나는 시간을 어떻게 발전시킬까를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교육감이나 학교 관리자들이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교사가 된지 된지 2~3년 밖에 안돼 서툰 이에게 잡무를 마구 맡겨놓고 그거 하느라 아이들 방치되고 있는 걸 ‘나몰라라’ 하는게 현실이다. 잡무를 모두 교사들이 하는데 그러다 보니 아이들을 제대로 못챙긴다. 행정을 전담해는 교사직렬을 만들든가 하는 식으로 교사가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사진=박민규 선임기자


■청소년기 ‘질풍노도’를 닮은 한국 사회 


서천석은 최근 들어 연대와 공동체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 1월 열린 방송사 주최 강연에서는 “우리 사회가 많이 발전하고 중요한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느꼈다”며 촛불집회에 참석한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 최근 정치상황을 보면 정신의학적인 측면에서도 한국이 좋은 사회는 아닐 것 같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게 단편에 불과하니 ‘뭐가 이렇다’고 정의하는 건 위험할 것 같다. 근데 흔히 말하듯 한국이 그토록 ‘병든사회’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건강한 면이 있고, 에너지가 넘치는 젊은 사회인 것 같다. 젊다 보니 청소년기 남자아이들처럼 질풍노도처럼 움직이다가 다시 흐지부지하는 식의 문제가 있다. 세련돼 가는데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사실 촛불집회 전까지는 우리도 노쇠화돼 변화·발전에너지도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가,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확인되지 않았나. 너무 염세적으로 보는건 맞지 않다. 잘살아보려는 욕구나 좋은 나라를 만들려는 욕구는 똑같다고 본다.”

 

- ‘헬조선’이란 어휘가 여전히 회자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방향을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 


“물론 맞다. 청년 문제는 부모세대가 아이에게 성장지항적 가치관을 심었는데 그게 결과로 나오지 않아 생기는 분노라고 본다. 노력했는데도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분노의 땔감이 된다. 물론 어떤 이는‘늘 PC방 가서 게임이나 하던 애들이 화는 더 낸다’고 하지만 그 친구들도 온갖 잔소리와 ‘공부 못한다’는 구박을 오랜 기간 들어오면서 공부못지 않게 힘들었을 것이다. 근데 다른 나라를 돌아봐도 비슷하다. 청년층이 너무나 어려운 조건이라는 건 선진국도 공통된 현상인 것 같다. 요컨대 ‘헬조선’을 넘어 ‘헬세계’다.”

 

- 우리 노동행태를 보면 조바심을 쳐야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당일배송’으로 택배기사의 고충은 상상을 넘는다고 한다. 대리기사도 마찬가지인데 외국엔 이런 직업이 없다. 건강한 사회가 아닌 것 같다. 


“건강하지 않다. 우리는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생존에 유리한 시대를 겪어왔고, 그 덕에 발전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염증을 내고 있으니 변화할 것 같다. 무릎꿇고 주문받는 과잉서비스가 요즘 줄어들고 있는 것처럼. 속도경쟁도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느냐는 의식이 확산될 것으로 본다. 물론 규제도 필요할 것이다.” 

 

- 일과 삶의 균형을 잡아야 하는 것도 사회의 건강회복을 위해 중요할 것 같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더나은 삶의 지수를 보면 ‘공동체 생활’과 ‘일과 삶의 균형’에서 최하위권이다. 이것도 희생해봐야 발전하지 않는 걸 느끼면서 변화가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리더들이 생각을 퍼뜨려야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렇진 못한 것 같다.”

 

- 우리 사회가 과정의 미학이 결여돼 있는데 이는 ‘빨리빨리 증후군’과 맥이 닿아있는 것 같다.  


“일을 하면서 갖는 느낌이 무시되고 어떤 결과를 냈느냐, 경쟁에서 이겼느냐만 보는게 현실이다. 교육도 아이에게 가르친다는 것이 최종적으로 정리된 공식 요약본을 얼마나 외웠느냐가 가장 중시된다. 예전에 초등학교 1학년 교실을 바라보면서 ‘학교가는 길’이란 주제로 방송한 적이 있다. 근데 아이들 이야기가 다 다르더라. 어떤 아이는 학교오는 길에 본 가로수들을 이야기하고, 다른 아이는 골목길, 어떤 아이는 길에서 만난 강아지 이야기를 한다. 사람 경험이 각기 다르고, 그래서 마음대로 단정하면 안된다는 걸 배우는 것도 교육이지만, 우리 교육은 학교갈 때 ‘차 조심해라’ 같은 몇개의 정리된 항목을 외우도록 하는 식이다. 나머지는 ‘잡담’으로 간주해 버린다. 최종 정리된 공식이나 요약적 지식만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전부라면 우리 공교육은 망할 수 밖에 없다.” 

 

- 강연에서 공동체와 연대를 자주 거론하는 것 같다. 


“아이를 부모만이 키우는 건 불가능하다. 부모도 건강이 나빠질 수 있고 약해질 수 있다. 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함께 키우는 게 필요하다. (부모가 키우라는 건) 사회적 책임을 줄이고 부모에게 더 많은 책임을 지우려는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그 과정에서 너무 힘들다보니 애를 안낳는거다. 얼마전 트레킹을 갔는데 절벽을 잇는 다리에 난간이 없었다. 겁이 나서 경치도 둘러보지 못한 채 앞만 보고 걸어야 했다. 공동체가 없는 삶이 꼭 그렇다. 불안에 시달리고 현실을 즐기기 어렵다. 영화 <나, 다니엘 브레이크>에서 나타나듯 국가안전망도 관료주의화되지 않느냐. 현대에 맞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지 않으면 육아도 개인의 행복도 찾기 어렵게 된다.”

 

-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어떤 방법을 생각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해소하는가를 돕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다리와 길을 만든다면 사람들을 연결하는 길과 다리를 만드는‘사회간접문화자본’이 필요하다. 기업의 퍼실레테이터(조력자)같은 역할처럼, 갈등을 해소하거나 관계를 촉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마을에 두는 것이다. 자치단체에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두고 지역공동체를 어떻게 활성화할지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 정부가 그런데 투자할 때가 됐다.”

 

-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 키우기'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지금은 유사이래 가장 격렬한 ‘총력양육’의 시대다. ‘헬리콥터 맘’ ‘잔디깎기 맘’ 같은 용어들이 생길 정도다. 평범한 부모도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하고, 긴 시간을 아이들과 보내면서도 부족함을 느낀다. 근데 개인의 노력으로 (사회적) 편차를 메우기 어렵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고 있다. 한때 ‘부자되세요’의 시대였다가 지금은 노력해 봐야 안되니 ‘힐링하자’는 시대로 바뀌었다. 이젠 한계를 인정하고 불안을 받아들이는 ‘겸손한 육아’로 가야할 것 같다. 부모가 아이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리자는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이고, 아이가 장래 어떤 삶을 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괜찮을까’ 걱정도 되지만 또 그렇게까지 잘못되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충실할 수 있는 오늘 이 순간에 집중하는게 ‘겸손한 육아’다.” 

 

“아이에게 하나하나 가르치고 주입하고 경험하게 하려면 부모가 ‘으뜸코치’가 돼야 한다. 근데 부모가 그렇게 훌륭하지도 능력이 뛰어나지도 않은데 스스로 자꾸 몰아치다 보니 아이한테 자꾸 화만 내게 된다. 삶에 부정적인 인식만 심어주게 되는 거다. 나도 한계가 있는 걸 인정하고, 아이도 안되는 건 포기하고 넘어가는 걸 배울 필요가 있다. 그걸 못 배우면 인생이 너무 불행해진다. 한계를 인정하고 아이와 함께 발전하려는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 

 

- 스트레스가 많은 사회에서 개인적으로 가져야 할 덕목은 뭔가. 


“공동체를 벗어나 독립적 개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긍정하는 힘이 필요하다. 또 사회와 속도에 휩쓸리기 말아야 한다. 인정받기 위해 높이 올라가려다 실망하고 내가 상처주는 사람도 늘어날 수 있다. 멈춰서서 생각하지 않으면 휩쓸려 잃어버리는 게 많아진다.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뭔지’를 응시하는 시간을 때ㅐ로 가질 필요가 있다.”


-취미는 뭔가. 


“트레킹이다. 국내외 여기저기 상당히 많이 갔다왔다. 많이 걷는게 좋은 거 같다.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취미가 많아 사회활동을 잘 못한다. 사람을 만나고 다녀야 하는데 혼자할 게 워낙 많다. 나에게 집중하는 삶을 사는 거 같다.” 


-아이들은 아빠의 육아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크고 있나. 


“애들이 내 생각대로 자라는 것 같진 않지만, 그걸 보면서 오히려 배우게 된다. 나에게 장점이 있다면 모르면 배우고, 잘못은 빨리 인정한다는 점이다. 누구도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잘난 체 하면 안된다.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다가 안되면 생각을 바꿔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