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오늘

[어제의 오늘]1977년 서독 적군파 항공기 납치

서의동 2009. 10. 12. 18:34
ㆍ108시간만에 막내린 야만적 피랍극

서독의 적군파(Red Army Faction)인 ‘바더-마인호프’ 그룹의 실체를 다룬 울리 에델 감독의 영화 <바더 마인호프 콤
플렉스>에는 이런 대사가 등장한다. 

“돌 하나를 던지는 행위는 범죄가 되지만 1000개의 돌을 던지면 정치적인 행위가 됩니다. 차 한 대를 불태우면 범죄가 되지만 1000대를 불태우면 정치적인 행위가 됩니다.”

서독 적군파는 1968년 마르크스주의 세계혁명을 꿈꾸던 학생과 지식인 그룹에 의해 결성된 테러단체다. 베트남전 반대시위가 한창이던 67년 베를린 자유대학 학생 벤노 오네스오르그가 경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한 것을 계기로 학생운동의 핵심세력인 안드레아스 바더와 진보 언론인 울리케 마인호프가 의기투합했다. 두 사람은 요르단에서 테러리즘 교육을 받은 뒤 귀국해 은행들을 털며 테러자금을 조달했다.

서독 적군파는 구소련제 RPG-7(휴대용 대전차 유탄발사기) 등 당시로선 최첨단 무기와 사제폭탄으로 무장한 채 베를린 고등법원 판사 드렝크만 납치 총살, 스톡홀름 독일영사관 방화사건, 독일 연방검사장 지크프리트 부박 살해 등의 테러활동으로 독일 사회를 뒤흔들었다. 마르크스 레닌주의라는 ‘비판의 무기’를 ‘무기에 의한 비판’으로 대체한 셈이다. 91년 4월 동독 산업시설 민영화를 책임지고 있던 데틀레프 카르스텐 로베더를 암살한 마지막 테러를 포함해 34명이 살해됐다. 희생자는 대부분 서독의 정계 및 재계 지도자였다.

서독 정부와 적군파 간의 ‘항쟁’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처절했다. 77년 10월13일 스페인의 휴양지 마요르카를 출발한 서독행 루프트한자 여객기가 4명의 적군파가 고용한 테러리스트에 의해 납치됐다. 이들은 기장을 살해하고 기수를 소말리아의 모가디슈로 돌린 뒤 동료들의 석방을 요구했다가 108시간 만인 10월17일 서독 특공대에 의해 진압됐다. 특공대원들은 4개의 여객기 출입구를 동시에 폭파한 뒤 침투해 먼저 3명을 사살했고, 화장실에 숨어있던 여성 테러리스트를 마지막으로 사살했다. 승객과 승무원 86명은 무사히 구출됐다.

다음날 적군파의 우두머리인 안드레아스 바더는 수감돼 있던 감옥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적군파들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납치한 서독경영자협회 회장 슐레이만을 총살했다. 계속되는 테러에 대중이 등을 돌리면서 적군파는 급격히 쇠퇴해 갔다. 1년 후인 92년 4월14일 적군파는 인명살상과 테러투쟁의 포기를 선언했고, 98년에는 선언문을 발표하고 해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