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일본 기업들 'TV 버리고 에너지 산업으로'

서의동 2011. 11. 2. 21:47
“TV 등의 가전분야를 축소하는 대신 환경·에너지 분야쪽으로 사업재편을 해나가겠습니다.”
 
 

가전분야 대기업인 파나소닉 오쓰보 후미오(大坪文雄)사장이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에서 2011 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 적자가 4200억엔(약 5조9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내놓은 사업전환 계획의 핵심이다. 오쓰보 사장은 “TV는 각국에서 기업들의 신규참여가 이어지면서 범용화되고 있는 데다 엔고로 상품(경쟁)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라면서 “앞으로 태양광패널과 축전지 개발과 이들을 기반으로 저에너지 가정과 마을을 만드는 사업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전(家電) 시장에서 한때 세계를 석권했으나 엔고와 외국 후발기업들의 추격으로 고전해온 일본 가전업체들이 가전을 버리고 에너지·환경분야로 갈아타기 시작했다. 태양광발전, 축전지 등의 사업잠재력이 크고 일본의 기술력이 통할 수 있는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일본 사회에서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면서 내수시장의 기회가 열려 있는 것도 가전업체들의 구조전환에 부담을 덜고 있다.
 
기업들 속속 사업철수...저무는 TV왕국 

 

파나소닉은 일본내 5곳이던 TV용 패널공장을 2개로 감축할 계획이다. TV분야에서 1만명 이상을 감원하고, PDP TV
용 패널을 생산하는 최첨단 공장인 효고현 아마가사키(尼崎) 공장의 생산을 연내 중단할 계획이다. 지바(千葉)현의 평판 TV용 패널공장도 매각하기로 했다. 
 
소니도 TV와 비디오카메라 등의 가전제품 생산의 위탁생산 비중을 늘리고 있다. 도시바(東芝)는 사이타마현 후카야(深谷)의 TV공장을 7월부터 개발과 애프터서비스의 거점사업소로 재편한다. 일본기업이 세계 시장점유율의 80%에 달했던 디지털 카메라 분야는 이미 대부분 대만 등지에서 위탁생산을 하고 있다. 
 
일본 가전산업에서 산업공동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기술의 범용화와 엔화가치 상승 때문이다. TV의 경우 디지털TV 등장 이후 중간수준의 범용기술로도 제품에 질적 차이가 없어졌다. 최상의 제품의 질을 추구해온 일본 특유의 ‘모노즈쿠리(장인정신)’가 설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여기에 세계경제 불안과 함께 엔고현상이 지속되면서 일본 기업들의 수익성은 바닥을 치고 있다. 2004년 디지털 가전분야에서 일본은 1조550억엔(약 15조원)의 무역흑자를 기록했으나 2010년에는 1051억엔(약 1조5000억원)의 적자로 돌아섰고, 올해는 적자규모가 지난해의 2배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저에너지 산업에 신규참여 봇물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절전과 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기업들은 저에너지 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일본 정부도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전량매수토록하고 지열발전을 위한 규제를 푸는 등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일본 신문에는 매일이다 싶을 정도로 저에너지 분야에의 신규참여 소식이 올라온다. 원자력발전에 집중해온 도시바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올해부터 3년간 설비에 1조3000억엔을, 연구개발에 1조700억엔을 각각 투자해 스마트그리드(차세대 송전망) 사업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샤프와 일본IBM 등은 동일본대지진 피해지역인 미야기현 센다이(仙台)시에 태양광발전소를 활용하는 ‘에코타운’을 설립할 예정이다. 쓰나미 피해농지에서 태양광 에너지로 식품사업을 육성한다는 구상이다. 파나소닉은 도시가스와 공기를 활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가정용 연료전지의 판매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샤프, 교세라, 파나소닉 등 일본 3대 태양전지 제조업체들의 올 회계연도 판매 계획은 전년대비 35% 증가한 310만㎾에 달할 전망이다. 지열과 해상풍력발전으로 신규 참여도 늘고 있다. 미쓰비시종합연구소 와세다 사토시(早稻田聰) 주임연구원은 “저에너지 산업이 미래형 성장산업이라는 인식이 기업들에 보편화되고 있다”며 “유럽에 비해 다소 늦었지만 일본의 기술력을 감안할 때 사업기회를 살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일본의 저에너지 산업붐은 1970년대 오일쇼크와 1990년 교토의정서 채택에 이은 제3의 물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 미쓰비시종합연구소 와세다 사토시(早稻田聰·45·사진) 환경·에너지연구본부 주임연구원은 지난달 25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본의 에너지 산업이 본격적인 변혁의 시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우선 1억2000만명의 인구를 가진 일본 내수시장의 수요에 주목했다. 동일본대지진과 쓰나미로 괴멸된 도호쿠지방의 새로운 재건과정, 원전가동 중단에 따른 절전필요성이 거대한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와세다 연구원은 NTT등 통신사업자들이 태양광발전소 관리사업에 신규 참여하기로 한 점을 들며 “자연에너지 사업이 본격화되면 정보기술(IT), 통신기업 등도 참여할 사업분야가 조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해외에서도 석탄을 많이 쓰는 인도와 중국 등 신흥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수요가 많은 만큼 해외시장 전망도 밝다고 분석했다. 
 
와세다 연구원은 재생에너지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난관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일본 제조업에는 전기의 안정적 공급이 필요한 정밀분야가 많아 전력공급이 불안정한 태양광발전 등 재생에너지의 보급 확대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들어 축전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대규모 사업장의 수요를 충당할 대용량 축전지는 아직 가격이 비싸 기업으로서는 부담이 된다”며 “기술개발로 단가를 낮추는 작업이 재생에너지 보급의 관건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에서 가장 유망한 자연에너지 사업으로 태양광보다 해상풍력발전을 꼽았다. 와세다 연구원은 “해안에서 수백m 떨어진 바다에는 세찬 바람이 늘 일정하게 불기 때문에 안정적인 전력 생산이 가능하다”며 “4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일본의 자연환경에서 성장 잠재력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