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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책]중국화하는 일본(中國化する日本)

서의동 2012. 6. 2. 10:27

‘중국화’ 개념으로 본 일본사

일본에 거주하다 보면 가끔씩 일본이 북한과 닮은 데가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북한의 김일성주의와 과거 군국주의 일본의 천황(일왕)이데올로기가 닮은 것은 물론이고, ‘간바레(힘내라)’를 외치는 집단성도 그렇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고도성장을 이뤘지만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 어울리지 않는 질서와 관행도 많이 남아 있다. 사회주의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개혁·개방을 큰 저항감 없이 받아들이며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과 극히 대조적이다. 



이런 일본의 역사적 연원을 ‘중국화’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 <중국화하는 일본(中國化する日本)>(분게이슌주)이 최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아이치현립대 준교수인 사학자 요나하 준(與那覇潤)은 이 책에서 1000년 전 중국 송(宋·960~1279)대에 구축된 질서를 ‘중국화’로 규정해 일본사에 대해 분석을 시도한다. 


송은 당나라 때까지 유지돼왔던 귀족제를 철폐하고 황제 1인의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과거제와 군현제, 시장경제로 중국 ‘근세’를 열었다. 우선 과거제도를 도입해 능력이 있으면 신분에 상관없이 지배층에 편입될 기회를 부여했다. 귀족의 장원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신분제를 폐지하고 사람들의 이동·직업 선택을 자유롭게 했다. 


반면 보편적 이념에 기반을 둔 정치의 도덕화로 체제질서를 유지했다. 유럽의 근세 이후 경로도 ‘중국화’의 길을 밟아왔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냉전 이후 세계체제도 송대와 닮은꼴이다. 사회주의권 붕괴로 미국 일극체제가 수립된 것은 황제독재 체제와 유사하고, 탈규제화와 세계화도 귀족제·장원제의 해체와 마찬가지다. 

반면 일본은 ‘중국화’와 반대의 발전경로를 걸어왔다. 근세의 기점인 에도시대는 실권자인 쇼군(將軍)과 형식상 우위인 왕이 존재하는 이원 체제였다. 유교적 정치이념을 표방한 송대와 달리 정치는 이익배분의 조정에 지나지 않았다. 과거를 통해 능력자가 높은 지위를 얻는 ‘중국화’와 달리 에도시대에는 하급무사가 실무를 도맡고 상급자들은 수수방관했다. 중국화에서는 지역 공동체가 유동화된 반면 일본은 지역사회에 속박돼 ‘현재 주어진 일에 목숨을 걸고 일하는’ 것이 미덕이 됐다. 이 시대 농업 생산의 증가가 기술개발이나 소와 말의 보급 증가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일을 열심히 했기 때문이라는 ‘근면혁명론’이 역사학계의 정설이 될 정도였다. 

일본은 19세기 후반 메이지(明治)유신을 통해 일왕을 절대군주로 옹립하고 고등문관 임용시험을 도입하는 등 중국화를 선택했으나 적지 않은 저항을 초래하면서 에도시대 전통이 근대화와 뒤섞인 독특한 일본체제를 탄생시켰고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최근까지 사회 작동원리로 기능했다. 


회사가 무라(지역공동체)의 역할을 이어받아 종신고용과 기업복지를 베풀었고, 사원들은 과로사로 쓰러질 때까지 회사에 충성했다. 하지만 1990년대 거품경제 붕괴로 종신고용 신화가 무너지고 사회격차가 확대되면서 ‘반(反) 중국화’의 한계가 드러났다. 지난해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은 결정타였다. 

저자는 결국은 ‘중국화’가 불가피하다면서도 이왕 할 바엔 좀 더 멋지고 매력적으로 하자고 말한다. ‘이민’ 문호를 개방해 외국인들이 와서 살고 싶은 나라가 되도록 하고, 전쟁포기를 규정한 ‘평화헌법’의 고귀한 이상을 내세워 중국을 제치고 일본이 ‘중화(中華)’를 구현하자는 것이다. 현재 일본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역사적 맥락에서 설득력 있게 분석한 젊은 사학자의 ‘쾌도난마’가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