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한일비교] (12)'손글씨'에 대한 태도

서의동 2013. 3. 18. 17:45

후배기자가 쓴 '팩스와 작별하지 못하는 일본'(2013년 3월9일자) 기사를 보면서 일본의 '손글씨' 문화에 대해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최근 일본 TV에서 연예인들의 손글씨 실력을 측정하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한자와 일본어로 된 간단한 문장을 연예인들이 정성들여 손으로 쓰고,나카쓰카 스이토(中塚翠涛.33)라는 미인 서예가가 글씨에 대한 점수를 매긴다. 자당 10점 만점에 10자에 대해 점수(100점 만점)를 매겨 90점이상이면 비모지(美文字)로, 80점 미만이면 오모지(汚文字)로 가른다. 한자의 획순 맞추기를 겨루는는 오락프로그램도 있다. 


일본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한 서예가 나카쓰카 스이토가 연예인들의 글씨를 채점하는 장면


일본에서는 일상적으로 손글씨를 직접 써야 할 일들이 적지 않다. 연말연시에 보내는 연하장이 대표적이다. 연하장을 100장 이상씩 보내는 경우 엽서 뒷면에 사진이나 자신의 한햇동안 있었던 이력이나 소감문을 넣어 제작하는 경우가 보통이지만 그래도 반드시 손글씨를 첨가해서 상대방에 대한 느낌이나 고마움을 전한다. 행사 참석을 알리는 팩스에는 반드시 참석여부를 적어서 보내달라는 칸이 있다. 여기에 글씨를 써서 다시 팩스로 보내줘야 한다. 의료보험이나 아동수당 등의 변경 등의 절차에는 구청에서 보내준 서류의 각 항목을 손글씨로 메꾼 뒤 반송봉투에 넣어서 보낸다. 호텔 체크인은 물론이고, 심지어 동네 골프연습장에 가더라도 손글씨를 써야할 일이 생긴다. 


'일본인들은 컴퓨터로 출력한 문서보다 손글씨 문서를 더 높게 평가한다. 글씨에서 사람의 됨됨이가 드러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린이부터 노년층까지 서예를 배우며 평생 글씨체를 갈고 닦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팩스와 작별하지 못하는 일본, 왜?'에서 인용)


일본 학교에서는 손글씨(과거엔 우리나라에서도 '습자'시간이 있었다)와 서예가 정식과목으로 개설돼 있다. 문부과학성의 학습지도요령에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 서예수업을 하도록 정해져 있다. 고등학교 예술과에는 서예가 음악, 미술과 나란히 선택과목으로 배치돼 있다. 대학에서도 교육학부와 문학부가 있는 학교는 서예강의가 개설돼 있다. 각 현에서 교원양성을 전문으로 하는 대학의 교육학부에서는 글씨교육, 서예교육의 연구실을 두고 전문교육을 실시한다. 손글씨나 서예가 어엿한 직업이 되는 것이다. 


일본에선 유도처럼 서예에도 급과 단을 주고, 정기적인 승급(단) 심사도 이뤄진다. 손글씨 프로그램에 단증이 있는 연예인이 나올 때는 '서예 2단' 등의 자막이 등장하기도 한다. 알고 지내는 일본인의 딸은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전철로 두정거장 떨어진 우리 동네의 서예학원을 다닌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거나 사회에 진출하더라도 손글씨를 쓸 일이 많기 때문에 학원을 다니거나 동호회 같은 모임도 활성화돼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손글씨를 잘 써보려는 열망이 있기 때문에 서예가는 인기 직업이다. 


전통문화를 중시하는 일본에서는 한자의 풍부한 모양을 계승 발전시킨 디자인이 널리 활용되고 있고,'동양의 미학'으로 주목받아왔다. 이런 점까지 감안하면 일본의 '손글씨' 사랑을 막연히 '갈라파고스 현상'으로 폄훼하기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