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47

[경향의 눈] 우리는 서독만큼 매력적인가

예멘 난민 문제는 한국 사회의 협량을 확인하는 좋은 본보기가 됐다. 제주 출입국·외국인청이 지난 14일 예멘 난민 신청자 중 2명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했다는 뉴스에 붙은 댓글들이다.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를 빼앗길 수는 없다”, “분단에 휴전국인 나라에서 무슨 난민이냐”, “자국민 살기 힘들어 죽어나가는 건 남의 일인 양 보면서…”. 제주 예멘인 난민신청자(484명)의 난민 인정률이 0.4%에 불과하다는 건 ‘그러거나 말거나’다. ‘포용력 부족’ 정도로 넘길 문제는 아니다. 난민 기사에 달린 댓글을 읽다보면 공동수도와 화장실을 쓰느라 비좁은 골목길에서 악다구니가 오가는 피란민촌의 아침 풍경이 떠오른다. 경제 볼륨은 세계 10위권으로 커졌지만, 사회의 심리상태는 전쟁통 난민촌에 가깝다. 간신히 맞춰놓은 삶..

칼럼 2019.01.18

[경향의 눈] 김정은 위원장이 걸어온 1년

“친애하는 여러분, 우리 앞길에는 탄탄대로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생각 못했던 도전과 난관, 시련도 막아나설 수 있습니다.”9·19 평양공동선언을 채택한 직후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표출한 우려는 곧 현실이 됐다.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미관계는 장기 교착상태에 빠졌다. 북한이 여러 차례 비핵화 의지를 피력해왔지만 미국은 대북 압박의 고삐를 놓지 않고 있다.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던 미국은 지난 25년간의 낡은 대북 접근법으로 다시 되돌아갔다. 표정만 부드러워졌을 뿐이다. 요즘 김정은 위원장의 머릿속은 ‘미국이 정말로 북한과 관계개선할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으로 차 있을 것이다. 최근 북·미대화에 응하지 않는 것은 이런 회의감 때문일 수도 있다..

칼럼 2018.12.05

[경향의 눈] 한반도 대전환에 어지럼증을 느끼는 이들에게

올 들어 남북관계가 복원된 이후 정상회담만 세 차례 열렸고, 문화·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의 교류가 전개돼 왔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무기가 사라졌고, 65년 만에 비무장지대에서 전쟁 유해의 발굴이 시작됐다. 이달 말이면 전방 감시초소들도 시범철수된다. 다기한 분야에서 남북관계가 속도감 있게 전개되다 보니 ‘우리가 어디쯤 와 있고, 왜 여기에 있는지’ 현기증이 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남북관계 기사에 냉소 섞인 댓글들이 달리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어 보인다. 어떤 변화든 거저 일어나지는 않는다. 운동을 하려고 안 쓰던 근육을 오랜만에 쓰려면 통증이 생기는 것과 같다. 하물며 70년 냉전체제의 껍질을 깨기가 쉬운 일인가. 우리 시야도 정세변화에 맞춰 바꾸지 않으면 초점이 안 맞아 어지럼증이 심해진다. ..

칼럼 2018.11.12

[경향의 눈] 동맹을 다시 생각한다

4·27 남북정상회담과 6·12 북·미 정상회담의 여운이 남은 지난 7월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통일에 대한 20대 응답자의 찬성의견이 지난해 38.8%에서 73.3%로 배나 올랐다(서울신문 7월18일자). 20대는 지난해 조사에서 찬성보다 반대가 많은 유일한 연령대였고, 80%가량이 2월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결성을 반대했다. 북·미 후속협상이 교착되기 전의 호시절이라 해도 청년들의 남북관계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로까지 호전된 것은 예상 밖이었다. 까칠하던 청년들의 마음이 움직인 데는 남북관계 발전이 팍팍한 ‘헬조선’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작용했을 것 같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남쪽 땅을 밟고,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엄지를 세우는 초현실적 광경들을 지켜보면서 ..

칼럼 2018.09.11

[경향의 눈] 폐곡선에 갇힌 북·미관계

북·미 협상 25년 역사는 동일한 패턴의 지겨운 반복 과정이었다. 협상이 타결되고 관계 개선의 전기가 마련될 때쯤이면 북한에 대한 새로운 의혹이 돌출하거나, 미국이 합의에서 벗어난 요구를 하며 북한을 자극한다. 북한이 반발하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북·미관계가 다시 얼어붙는다. 폐곡선(閉曲線)궤도를 벗어날 수 없는 장난감 기차처럼 북·미관계는 수십년째 같은 경로를 뱅뱅 돌고 있다. 1992년 1월 한·미 양국이 팀스피릿 훈련을 중단하기로 하자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서명했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협정을 체결했다. 협정 체결은 한반도 국면을 바꿀 만한 중대 결정이었다. 그러자 ‘북한이 핵무기 1~2기를 만들 수 있는 10㎏ 안팎의 플루토늄을 추출했다’는 추정을 미국 CIA가 들고 나왔다..

칼럼 2018.08.16

[경향의 눈] 예멘 난민 사태가 일깨운 것들

예멘 난민 문제는 사실 답이 정해져 있다. 한국은 유엔난민협약 가입국이자 국내법으로 난민법을 제정한 나라이니 그에 걸맞은 조치를 취하면 된다. 난민신청자가 오면 엄격한 심사를 거쳐 난민지위를 부여할지를 가리면 그만이다. 정부는 올 들어 예멘에서 난민신청자가 몰리자 무사증 입국대상 국가에서 예멘을 제외했다. 어느 나라든 특정 국가 난민이 몰리면 ‘입국 밸브’를 일시적으로 잠그는 것은 상례다. 하지만 공항이나 항구에 입국한 난민을 내쫓는 협약 가입국은 없다. 유독 예멘 난민 문제에 관해서는 이런 공식을 달가워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 난민 기사에 붙은 댓글들을 보면 난민 옹호론은 찾기 어렵다. 댓글 시스템 등장 이래 기사와 댓글이 이번처럼 대척점에 서 있는 경우도 유례없는 일이다. 댓글들로만 보면 예전 북한 ..

칼럼 2018.07.11

[경향의 눈] 김정은의 마지막 고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코앞에 둔 지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머릿속은 복잡할 것이다. 70년 적대관계이던 미국의 정상과 운명을 건 거래를 해야 하는 중압감이 짓누르고 있을 것이다. 임박한 협상의 성공 여부도 그렇지만, ‘트럼프 이후의 미국 정부가 합의를 지킬 것인가’에까지 고민이 뻗쳐 있을 것이다. 리비아나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갈 것 없이 3년 만에 파기된 ‘이란 핵합의’를 봐도 김정은 위원장의 고민을 헤아려 볼 수 있다.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2015년 7월14일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독일·유럽연합(EU)과 함께 이란이 핵 활동을 제한하면 제재를 푸는 ‘포괄적 공동행동계획’에 이란과 합의했다. 이후 이란은 원심분리기 감축, 저농축 우라늄 해외반출 등 합의를 이행했..

칼럼 2018.07.04

[경향의 눈] 탈북인들의 귀향

영화 에서 북한 교향악단의 호른 연주자인 선호는 결혼을 약속한 연화를 두고 가족과 함께 탈북한다. 서울에 내려온 뒤 각고 끝에 연화의 탈북자금을 마련하지만 브로커에게 돈을 몽땅 빼앗겨 버린다. 어려울 때 곁을 지켜준 남쪽 여성 경주와 가정을 꾸리며 생활에 적응할 무렵 연화가 내려오며 비극은 정점으로 치닫는다. 2006년 개봉된 영화지만 선호와 연화가 어쩔 수 없이 이별하는 막바지 장면에선 여전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어느덧 3만명에 이르는 탈북인들 중에는 이보다 몇 배나 큰 설움을 안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대량 탈북 사태는 최악의 식량난이 북한을 덮친 1990년대 중후반 본격화됐다. 처음엔 식량을 구해올 요량으로 강을 건너던 것이 북·중 당국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목숨을 건 탈출이 돼버렸고, ..

칼럼 2018.05.11

[경향의 눈] 재미있는 남북관계

올 들어 재개된 남북교류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남측 예술단의 평양 공연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아이돌 그룹 레드벨벳이 마주친 장면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공연을 참관한 뒤 레드벨벳 멤버들과 차례로 악수하더니 아이린과 나란히 서서 포즈를 취한 장면이 워낙 초현실적이다 보니 소셜미디어 공간에선 각종 ‘드립’들이 만발했다. 팬심 가득한 김정은이 아이린과 인증샷까지 찍었으니 ‘성덕(성공한 덕후)’이 됐고, 아이린은 ‘대북 억지력의 정점’에 올랐다는 따위들이다. “내가 레드벨벳을 보러 올지 관심들이 많았는데(후략)” “같은 동포인데 레드벨벳을 왜 모르겠느냐”는 말에 ‘덕후’임을 확신한 이들이 ‘김정은이 레드벨벳을 한 번 더 보려고 멤버 조이를 일부러 불참시켰다’는 음모론을 만들어 퍼뜨리기도 했다. 대륙간탄도..

칼럼 2018.04.13

[경향의 눈] '북풍'을 잃어버린 아베

3월 한반도에 화해의 훈풍이 불기 시작했지만 봄바람을 느끼지 못하는 두 집단이 있다. 자유한국당과 일본 아베 정권이다. 자유한국당도 딱하지만 아베 정권도 낭패한 기색이 역력하다. 서훈 국정원장이 아베 신조 총리와 만나 방북·방미 결과를 설명하던 13일 일본 주요 일간지의 중견간부에게 전화로 물어봤다. - 지금 아베 정권은 어떤 분위기인가. “‘내우외환’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다.(아베 정권은 사학스캔들이 다시 불거지면서 궁지에 몰려있다)” - 일본은 북한의 태도변화에 가장 당황하는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일본이 대북압박에 가장 목소리를 높였으니. 아베 정권은 북·미 정상회담이 사전협의 단계에서 엎어지길 내심 바랄지 모른다.” - 일본도 미국처럼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면 되지 않나. “이제 ..

칼럼 2018.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