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일본 우익세력 개헌 시동… 빛바랜 평화헌법 66주년

서의동 2013. 5. 2. 21:25

ㆍ국민 54% “96조 개정 반대”


2차 세계대전 패전국 일본을 ‘평화국가’로 거듭나게 한 일본 헌법이 3일 시행 66주년을 맞아 기로에 놓였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 보수·우익 세력이 개헌 작업의 시동을 걸면서 그 어느 때보다 거센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1일 “헌법 개정은 자민당 설립 때부터의 과제였고, 7월 참의원 선거에서도 공약”이라며 선거를 승리로 이끈 뒤 헌법 개정에 착수할 방침임을 재확인했다. 아베 정권의 시나리오는 선거 승리 후 개헌 발의 요건을 정한 헌법 96조 개정에 우선 착수한 다음 일왕을 국가원수로 하고,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하는 개정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것이다. 개헌이 이뤄지면 일본은 전쟁포기 국가에서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 바뀌게 된다. 보수·우익 세력들이 전후 줄기차게 제기해온 ‘전후 총결산’이 완성되는 것이다. 

1947년 연합국사령부(GHQ)가 제정한 일본 평화헌법은 국민주권, 평화주의, 인권존중을 3대 기본이념으로 세우고 군국주의와의 결별, 침략전쟁의 재발 방지 및 반성의 정신을 담았다. 특히 ‘전쟁포기와 군대보유 금지’를 규정한 9조는 일본이 세계에 자랑해온 평화헌법의 핵심이자 전후 일본의 번영을 이끌어온 근본 토대였다. 

반면 일본 보수·우익들은 현행 헌법이 전후 연합국에 의해 졸속으로 만들어지면서 일본인의 자존심을 짓밟았을 뿐 아니라 일본을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불구 상태로 만들었다며 개헌을 주장해왔다. 다만 사민당(구 사회당)과 공산당 등 호헌·평화세력이 1990년대까지 개헌저지선(의석수 3분의 1)을 꾸준히 유지해왔고, 자민당 정권도 주변국의 반발과 국내 파장 등을 우려해 공론화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호헌·평화세력이 북한의 일본인 납치사건과 중·일 갈등을 거치면서 세력이 크게 약화된 데다 리버럴(자유주의)로 분류되는 민주당이 지난해 12월 중의원 선거에서 참패하면서 개헌파에 대한 견제력은 거의 사라졌다. 게다가 개헌을 숙원으로 여겨온 아베 총리가 초기 정권운영에 성공함으로써 개헌을 위한 여건이 갖춰졌다. 

정치권에서는 자민당 외에도 일본유신회 등 우익정당들이 추가로 등장하면서 개헌 논의가 탄력을 받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이 지난달 30일 중·참의원 의원 439명(전체 720명)을 상대로 실시해 2일 보도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74%가 96조 개정에 찬성했다. 

자민당에서는 96%, 일본유신회에서는 98%, 다함께당에서는 96%가 찬성했다. 

하지만 여론은 냉랭하다. 2일 아사히신문이 국민 2194명을 상대로 우편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54%가 헌법 96조 개정에 반대했다. 찬성은 38%에 그쳤다. 

헌법 9조에 대해서도 “바꾸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52%인 반면, “바꾸는 게 좋겠다”는 의견은 39%에 그쳤다. 

보수계열인 산케이신문이 지난달 20~21일에 벌인 여론조사에서도 “96조 개정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44.7%로 찬성(42.1%)보다 많았다. 현재 여론대로라면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국민투표의 벽을 넘지 못하게 된다. 개헌 저지의 유일한 버팀목이 일본의 건전한 여론인 셈이다.


일본 민주당 간사장, 집단적 자위권 용인 시사

일본 제1야당인 민주당의 호소노 고시(細野豪志) 간사장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해야 한다는 입장을 시사했다.

1일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호소노 간사장은 전날 기자들에게 “옆에 있는 미군이 공격받을 경우 당연히 자위대로서는 (응전)해야 한다”며 “집단적 자위권 문제는 개별적으로 논의해 보면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사일 방위도 타국이 일본에 (미사일을) 겨냥하고 있는지 확실하지 않다고 해서 분명히 대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당내 2인자인 호소노 간사장의 발언은 구 사회당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반대하는 의견이 강한 민주당 분위기와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민주당 정권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내각 때인 지난해 7월 총리 직속 위원회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촉구하는 의견을 내기는 했지만 당론으로 찬성한 적은 없다.

집단적 자위권은 자국이 직접 공격받지 않아도 동맹국이 공격받았다는 이유로 타국에 반격할 수 있는 권리를 가리킨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국제법에 따라 일본도 집단적 자위권이 있지만 헌법상 행사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아베 정권은 오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 허용 문제를 선거쟁점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자민당 간사장은 지난달 28일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해 무엇을 할지에 대해 국민의 판단을 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