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재일동포이야기(1) 권리세와 '바카총 카메라'

서의동 2014. 9. 9. 17:53

일본에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자이니치(在日)로 불리는 재일동포들과 가까이 지낼 기회가 많았다. 


우선 스포츠신문에 자이니치 선배가 있었다. 일본의 종합지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채용된 재일동포 선배인데, 현재는 스포츠지로 옮겼다. 이 선배와 거의 일주일에 한번씩 술을 먹으러 다니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 신문사에서는 아직도 한국을 차별하는 은어들이 남아 있다. 예를 들어 '바카총 카메라'라는 말이 있다. 수동카메라(DSLR)가 아닌 '똑딱이 카메라'를 바카총 카메라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바카'(馬鹿)나 '총(チョン)’라도 작동할 수 있는 카메라라는 뜻이다. 여기서 '총'은 한국인(조선인)을 비하할 때 쓰는 말이다. 즉, 바보나 조센징이라도 다룰 수 있는 카메라라는 뜻이다. 


2012년에 열린 대한민국민단 집회장면


이 '총'이라는 차별적 은어는 의외로 이곳 저곳에서 쓰이고 있었다. 대학수강 과목중에서 쉬운 과목을 가리키는 말에도 '총'이라는 말이 쓰인다고 들었다. (정확한 어휘는 기억나지 않는다)


자이니치로 신문사에 입사해 보이지 않는 차별을 겪어오던 이 선배는 한차례 크게 갈등을 빚기도 했다.그의 고향은 경북 경주였다. 하지만 한국에서 지금 연락이 제대로 닿는 친척은 없다. 그래도 고향에 가보고 싶어서 예전의 기록만을 들고 경주 일대를 뒤질 정도로 '모국'에 대한 애착은 깊었다. 


자이니치의 일본 사회 진출범위는 생각보다 다양하다. 한때 자이니치의 사회 진출 경로로 야키니쿠(불고기집)나 빠친코, 혹은 야쿠자 행동대원 정도였다는 말이 있었지만 옛말이 됐다. 요즘은 변호사, 의사, 기자, 영화제작 등 전문직으로도 폭을 넓히고 있다. 최근에는 송 아무개라는 의사가 여성의 성(性) 문제와 관련한 솔직한 이야기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의사는 한국명을 쓰고 방송에 나와서도 자이니치임을 밝힌다. 


하지만 자이니치들의 한국에 대한 생각은 대단히 복잡하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그들에게 한국은 '조국'이긴 하되 너무 낯설고 이질적인 공간으로 느끼고 있는 듯 싶었다. 특히 그들은 한일관계가 나빠지는 것을 매우 우려했다. 한일관계가 나빠질수록 자이니치는 기를 펴지 못하고 산다. 


한 자이니치의 이야기다. 


"올해 도쿄에서 열리는 향우회에 몇년만에 갔더니 꽤 많은 이들이 귀화했다. 향우회 사무국 직원도 나에게 '귀화하는 게 어떠냐'며 권하더라. 예전엔 귀화하면 향우회에 나오지 않는 이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대개 3대나 4대쯤 돼 '모국'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다. 자라며 차별을 당한 이들도 적지 않다. 지금도 사업을 하는 이들은 편의상 일본이름을 쓴다. 그러다 뭔가 법률적으로 서류를 작성해야 할 시기가 되면 자이니치라는게 밝혀지게 된다. 그로 인해 겪는 어색하고 애매한 분위기. 이런 모든 것들이 그들이 살아가는데 핸디캡이 된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왜 국적을 지키고 있는 걸까.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대체로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의지하고 싶은 정신적 고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낯선 사람과의 자리나 잠깐 섞여야할 공간에서는 '자이니치'임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설명하기 번거롭기 때문에 이름도 가급적 '일본명'을 쓰고 만다. 그런 탓에 재일 3, 4세가 되도록 한국이름을 쓰고 있는 이들을 보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런 조국은 그러나 자이니치들에게 상처를 많이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화제작자 이봉우씨다. 원래 총련 출신으로 조선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의 기자를 지내기도 했던 이봉우는 <서편제> <쉬리> <공동경비구역> 등을 수입해 일본에 소개한 이다. 일본에 한류붐이 부는데 상당한 기여를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영화제작에도 나서 <박치기> <훌라걸즈> 등을 만들어 성공했다. 그는 서울 명동에 건물을 임대해 일본영화 전문관으로 운영하다 사기를 당해 투자금 40억원을 날렸다.  


어떤 이는 한국에 있는 아버지의 고향에 투자를 해보려다 터무니없는 바가지에 그만뒀다고 한다. 심지어 일본에 주재할 무렵에 알게된 금융회사 직원조차 자신을 속이려는 듯한 태도를 취해 염증을 느끼고 한국에 대한 투자를 깨끗이 포기했다. 그뒤로 한국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고 한다. 


재일동포들이 차별을 받아가며 한국의 발전에 기여해온 공로는 생각외로 크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이런 공로를 제대로 몰라준다. 아니면 재일동포들을 '반쪽발이'라고 업신여기거나 '봉'정도로 간주한다. 

권리세라는 아이돌의 이름은 교통사고가 나서야 처음 알게 됐다. 하지만 일본에서 건너와 여러 어려움을 무릅쓰고 막 인기를 얻으려던 참에 이런 불행을 겪게 됐다니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