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서의동의 사람·사이-문정인][전문] "차기 정부가 미국에 '사드 동결' 제안해야"

서의동 2017. 5. 8. 21:59

문정인 연세대 특임명예교수 사진=박민규 선임기자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9년간 한국은 대북 봉쇄정책을 펼쳐왔고,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도 ‘전략적 인내’라는 명목 아래 북한에 빗장을 걸어둔 채 임기를 마쳤다. 그러는 동안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을 급속히 키웠고, 한반도와 동북아 긴장도 동시에 고조됐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전쟁위기설까지 불거졌던 긴장의 파고는 미·중 정상회담을 고비로 잦아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고의 압박과 개입’이라는 대북 원칙을 수립한 뒤 북한과 대화에 나서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북한도 도발을 자제하고 탐색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존재감을 잃고 논의에서 소외되는 ‘코리아 패싱’ 현상이 두드러졌다. 

한편으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를 둘러싼 논란은 ‘한국이 비용을 내야 한다’는 비용부담론으로 번지면서 혼선이 가중되고 있다.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외교안보 참모들이 사드 장비의 국내 반입을 주도한 정황이 드러난 것도 사태를 한층 악화시켰다. 5월9일 선거로 출범하는 차기 정부는 외교안보 분야에서 무거운 짐을 안게 됐다. 

연세대 명예 특임교수 문정인(66)을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동아시아재단에서 만나 차기 정부 대외과제에 관한 의견을 들었다. 문정인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대미정책에 깊숙이 관여해온 전문가다. 그는 차기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로 “‘한반도에서 전쟁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미국에 특사를 보내 북핵 문제와 관련한 양국 간 역할 분담을 협의해야 한다”면서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에 대해서도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고 특사를 파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드 문제에 대해서는 “국회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논의하는 한편 미국에 ‘동결’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문정인은 “차기 정부는 ‘강대국 결정론’의 시각에서 벗어나 ‘우리 운명을 우리가 결정해야 한다’는 태도로 대북정책에서 용기와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리아 패싱’은 대북 강경책이 자초 

-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태도가 종잡을 수 없다. 한동안 강경태도를 보이더니 최근엔 대화의지도 밝혔다.  

“칼빈슨호부터 ‘모든 폭탄의 어머니’라는 모압(MOAB·공중폭발 초대형 폭탄)까지 등장시키는 한편으로 ‘비핵화 의지가 있으면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도 했다. 리얼리티쇼 사회를 볼 때처럼 (선택수단들을) 드라마틱하게 제시하면서 북한이 결단하면 ‘빅딜’이 이뤄질 수 있음을 시사한 거다.”

 

- 북한도 최근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미대화를 위한 환경 정비가 시작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북·미 간 비밀접촉을 하고 있고, 여기에 트럼프가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설도 돈다. 트럼프는 국내정치 상황이 어려우니 외치에서 업적을 쌓아야 할 처지다. 그런데 이란 문제는 오래 걸릴 수 있으니, 북한에서 딜을 만들어보려는 유혹이 클 것이다. 하지만 특사를 보내는 데 필요한 ‘파이프라인’은 아직 구축되지 않은 것 같다. 한국의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


-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오바마 행정부와 어떻게 다른가. 

“제재와 압박이 한 축이고 다른 축에 대화와 협상이 위치하는 얼개는 동일하다. 다만, 오바마 행정부는 제재와 압박에 무게를 뒀고,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이에 힘을 실었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오바마가 제재와 압박도, 대화와 협상도 제대로 못했다고 비판하면서 ‘우리는 제재와 압박을 강력히 하되 북한이 대화로 나오면 화끈하게 하겠다’고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영광스럽게(honored)’ 만나겠다는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평양이 메시지를 잘 읽고, 협상과 대화에 나서면 위기를 피할 수 있다.”

 

- 미·중 정상회담을 고비로 한반도 위기 상황이 진정 흐름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초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핵을 해결할 용의가 있다’는 답을 얻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대북 압박에 동참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으로 보인다. 서로 ‘윈-윈’을 위한 전략적 거래를 한 셈이다. 트럼프가 대화 가능성을 비치고 있는 것은 (북한뿐 아니라) 중국에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중국이 북한을 제대로 압박해 협상에 나오도록 하면 기꺼이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신호다.”

 

- 환구시보가 지난달 22일 미국의 ‘외과수술식 타격’에 대해 중국의 군사개입이 불필요하다는 사설을 내보낸 거나 대북 원유 공급 중단 방안이 중국 내에서 거론되는 것도 일종의 압박수단인가. 

“물론이다. 환구시보는 중국의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어쨌건 미국과 북한 양쪽에 보내는 메시지 성격이 있다. 그래야 트럼프로서도 ‘중국이 내 말 잘 듣고 있지 않느냐’고 미국 내 여론을 조성할 수 있다.”

 

- 국면이 호전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 이 과정에서 한국이 소외되고 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직후 황원탁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방미해 클린턴 대통령에게 결과를 보고하고 김정일 위원장의 메시지도 전달했다. 그래서 이뤄진 게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양국 교차방문이다.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도록 하는 데도 한국이 중국보다 더 큰 역할을 했다. 남북관계가 개선돼야 한국 정부가 (외교의) 지렛대로 쓸 수 있는 거다. ‘코리아 패싱’은 박근혜 대북 봉쇄정책의 당연한 귀결이다.”



사진= 박민규 선임기자

■ 비핵화는 북핵 협상의 최종 목표 

문정인은 차기 정부가 2007년의 ‘2·13합의’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당시 합의는 1단계 핵시설 폐쇄 및 봉인, 2단계 불능화, 3단계 폐기의 수순을 밟도록 돼 있다. “우선 농축우라늄과 플루토늄 제조시설을 동결할 필요가 있다. 핵물질이 없으면 핵탄두를 생산할 수 없으니 핵시설을 불능화하고 폐기하는 것은 큰 진전이다. 다음으로 핵무기 ‘선제불사용’ 원칙을 천명하는 안전조치를 하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북·미 국교정상화 등을 하면 된다. 어려울 것이라고들 이야기하지만 모든 협상은 ‘과정’이다. 과정 속에서 성과를 도출하면 신뢰가 구축되고, 그러면 더 많은 혜택이 생긴다. 박근혜 정부는 해보지도 않고, ‘비핵화 오어 나싱(or nothing)’만 외쳤다.”

 

- 북한을 대화 테이블에 나오도록 할 유인책은 뭔가.  

“북한의 ‘비핵화’를 (대북 협상의) 입구에 놓으면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선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못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북 협상의 입구에 ‘동결’을, 비핵화를 출구에 놓고 그 가운데 감축과 검증 등을 배치해야 한다. 북한이 미국과 양자협상을 하겠다면 그렇게 하도록 지원할 필요도 있다. 나는 6자회담이 유효하다고 본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경제지원 등 인센티브를 줘야 하는데 결국 한국·일본·중국·러시아가 해야 한다. 북한이 하고픈 걸 못하게 하려면 응분의 대가가 있어야 한다. 도덕적 관점에서 ‘핵을 가지는 건 나쁜 일이니 중단하라’고만 하는 건 비현실적이다.”

 

 -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왜 이렇게 참담한 결과를 가져오게 됐나. 

“당선이후 인수위 시절에 북한이 핵실험을 한 뒤로 적개심을 갖게 됐던 것 같다. 2014년 3월 드레스덴 선언이 북한에 거부당했고, 지엽적인 도발이 반복되자 북한이 협상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결론내린 거다. 이후 ‘통일대박론’이 나왔다. 당시 내가 통일준비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박 대통령이 ‘통일이 내년에도 올 수 있으니 준비하라’고 하더라. 북한이 붕괴될 걸로 봤으니 대화할 생각이 없었던 거다. 2015년 8월 목함지뢰 사건을 계기로 북한에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참가한 2+2 고위급 긴급접촉에서 북한이 상당한 양보를 했다. 하지만 북한붕괴론에 경도돼 계기를 살리지 못했다. 박 대통령이 그해 중국 승전절에 참석했을 때 시진핑 주석이 ‘북한과 대화할 것’을 주문했지만 무시했고, 그해 10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대한 별도성명을 내 비난했다. 금강산 관광재개와 이산가족 상봉문제를 논의한 차관급 회담도 우리측의 강경태도로 결렬됐다. 북한이 완전히 (대화를) 포기하게 됐고, 그래서 지난해 1월6일 핵실험을 강행하게 된다. 박근혜 정부가 얼마든지 상황을 관리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포착하지 못했다고 본다.” 

 

- 틸러슨 장관이 지난 3월 방한해 ‘군사적 옵션’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발언할 때 윤병세 장관이 동조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논란이 됐다.  

“미국이 군사행동을 해도 한국 정부는 괘념치 않을 것 같다는 인상을 심으면서 군사행동 논의를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이 외과수술식 공격을 한다고 해도 북 지휘부를 괴멸시키거나 핵시설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고농축우라늄 시설도 어디 숨겼는지 모른다. 길주의 핵실험장은 전술핵으로 공격해도 갱도 입구 정도만 타격받을 뿐이다. 최근 북한이 미사일에 고체연료를 쓰면서 이동식 발사로 바뀌고 있어 미사일이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다.” 

 

- 이런 공격이 한국과 무관하고 한국은 괜찮을 거라는 생각들을 하는 이들도 있다. 

“미국이 1994년 5월에 영변에 대한 ‘외과수술’식 공격을 검토하다 포기한 것은 60일 이내에 100만~150만명의 무고한 희생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북한이 반격을 하게 되면 미군기지가 있는 오산, 평택, 용산 같은 곳을 공격할텐데 전부 인구밀집지역이다. 확전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사진 = 박민규 선임기자

■ 차기 정부, 미국에 ‘사드 동결’ 제안해야 

- 차기 정부가 북핵 문제에 가져야 할 원칙과 수순은 뭔가. 

“먼저 ‘한반도에서 어떤 조건하에서라도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대통령이 천명해야 한다. 미국에도 ‘동맹이라도 어떠한 군사행동도 지지할 수 없다’고 선을 그어놓을 필요가 있다. 미국에 조속히 특사를 보내 북핵 문제와 관련해 양국이 분담할 역할을 협의하고, 한국의 주도적 위치를 설정해야 한다. 이후 대북 특사 파견 등을 통해 상황을 안정화시켜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와 협의할 때 염두에 둬야 할 점은 뭔가.

“양측에 공통점과 접점이 많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화이부동(和而不同)보다는 구동존이(求同存異)를 추구하는 거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의 대미정책은 화이부동 쪽이었다. 협력은 하지만 같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다 보니 ‘동맹파’ ‘자주파’ 논란이 불거졌다. 구동존이 자세로 공통가치와 이익의 접점을 강조하면서 협력해야 한다.”

 

- 북한의 시장화가 상당한 수준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에 장마당이라는 비공식 시장시스템이 있고, 암시장도 있는데 여기에 (정부)공식시장이 추가로 등장했다. 북한 전역에 450~500개의 공식시장이 도시권을 중심으로 생겨났다. 그래서 배급경제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불교경전에 보면 ‘보지 않고도 보고, 가지 않고도 가고, 듣지 않고도 듣는다’는 말이 나온다. 북한에 대해서도 ‘변화’라는 표현을 쓰지 않을 때 북한을 가장 잘 변화시킬 수 있다는 불교 변증법의 역설을 염두에 둬야 한다. 교류협력으로 (시장화에) 힘을 받게 해주면 북한이 빠른 속도로 바뀔 수 있다.” 

 

- 새 정부가 김정은 위원장을 대화 상대로 인정해야 하지 않나.  

“국내정치적으로 불리하다고 해도 북한과 대화하려면 그래야 한다. 우리는 미국처럼 ‘한가한 패권국가’가 아니다. 멀리 떨어져 있다면 가치우선주의에 입각해 북한을 비판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바로 붙어 있는 북한을 상대로 모험을 할 수가 없다.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합리적 지도자이고 대화가 가능하다고 본다’고 밝힌게 북측에 상당한 메시지를 줬고, 결국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 북핵·남북 문제 해결을 위해 차기 정부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용기와 상상력을 꼽은 적이 있다. 

“우리는 남북관계와 국제관계를 보는 시각이 고착화돼 ‘강대국 결정론’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우리 운명은 우리가 결정할 수 있고, 남북관계 개선을 주도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북한이 핵·미사일을 동결하면 한·미 연합군사연습을 유예하는 발상도 해볼 만하다.”

실제로 노태우 정부 때인 1992년 한·미 양국이 팀스피릿 훈련을 중단하고 이 대가로 북한이 국제 핵사찰을 허용한 전례가 있다. 당시 탈냉전 흐름을 타고 주한미군이 남한의 전술핵을 철수하기로 했는데 이를 대북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기 위해 노태우 정부가 훈련 중단 방침을 선언한 것이다. 이후 남북 간 대화가 진전되면서 ‘한반도 비핵화’ 합의가 이뤄졌다.  

 

- 남북관계를 미국과 어느 정도로 협의할 필요가 있나. 

“2000년 정상회담 추진 당시 임동원 국정원장이 북한과 접촉하면 보즈워스 주한 미국대사에게 알려줬다. 보즈워스 대사는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통해 클린턴 대통령에게 직보했다. 그래서 미국이 한국을 신뢰하고 정상회담을 지지하게 됐다.”

 

- 개성공단 재가동 문제도 미국과 협의해야 하나.  

“개성공단 재개는 미국과 일일이 상의할 필요가 없다. 우리 정부가 결단할 문제다. 물론 사전에 운을 띄워둘 필요는 있고, 결정이 선 뒤에 자세히 통보해주면 된다. (재가동 시기는?) 연내 이뤄져야 하겠지. 먼저 공단 입주기업인들이 공장 상태를 살피기 위해 방북하는 정도는 이른 시일 내 할 수 있지 않을까.” 

 

- 사드 배치는 이제 누가 비용을 대느냐의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드 배치는 이해하기 어렵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에 따라 미국은 한국에 통보하지 않고 무기를 들여올 수 있다. 그런데 왜 미국이 한국 정부와 사전에 협의하고 한국 정부는 이를 공개했는지 납득이 안 간다. 미국이 무기를 들여오는 명분은 주한미군과 시설 보호가 우선인데 사드는 주객이 전도돼 한국 방어용으로 둔갑했다. 그러니 트럼프가 청구서를 내밀겠다는 것 아닌가. 박근혜 정부의 책임이다.”

 

- 사드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사드 배치 경제 피해가 올해에만 8조5000억원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민생경제까지 위협하는 사안이 됐다. 국회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따지고 동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사드 배치에 대해 헌법소원 제기 움직임도 있고, 환경영향평가도 논란이다. 한국은 대통령을 탄핵시킨 나라다. 이런 문제가 있는데도 강행할 경우 파장이 너무 크니 새 대통령이 법률적 문제가 마무리될 때까지 ‘동결’하자고 미국에 제안해야 한다. 미국도 충분히 이해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