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경향의 눈] 개성공단 '희망고문 2년'

서의동 2019. 4. 30. 17:48

개성공단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는 장면 

개성공단에 진출했던 자동차 부품 전문업체 대화연료펌프는 정부가 2011년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지정할 정도로 탄탄한 기업이었다. 하지만 개성공단 폐쇄 이후 3년간 경영이 악화됐고, 수억원대 자금을 결제하지 못해 최근 부도처리됐다. 개성공단에서 의류공장을 운영했던 개성공단 비상대책위원회 정기섭 공동위원장도 국내 공장 두 곳을 접었다. “개성에서 번 돈으로 국내 공장 두 곳의 결손을 메워왔는데 개성공단 중단이 길어지면서 견디기 힘들었다.” 

 

공단 폐쇄 3년을 넘기면서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버틸 힘이 바닥났다. 은행대출은 일찌감치 막혀 사채를 끌어다 쓰며 버티는 기업들도 적지 않고, 부도위기에 몰린 곳도 10여곳에 이른다. 사실상 폐업상태지만 남북협력사업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사무실만 유지하며 휴업 중인 곳도 상당수다.

 

2016년 2월 박근혜 정부가 예고없이 개성공단의 가동을 중단했다. ‘정세와 상관없이 공단의 정상운영을 보장한다’는 2013년 남북 간 합의를 철석같이 믿었던 기업인들은 막대한 영업피해는 물론이고, ‘북한의 핵개발에 자금을 댔다’는 종북몰이까지 당했다. 정부는 기업들의 피해액을 대폭 낮춰 잡았고, 그나마 70%만 지원해줬다. 지원이라 해봐야 긴급운영자금 대출과 경협보험금 지급이 고작이다. 경협보험금은 공단이 열리면 반납해야 한다. 

 

2017년 3월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결정하자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재가동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하지만 입주기업에 660억원의 추가지원이 이뤄진 것 외엔 달라진 게 없다. 2년 가까이 ‘희망고문’만 지속되고 있다.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는 2017년 말 개성공단 중단 조치가 “공식 의사결정 체계의 토론과 협의를 거치지 않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일방적 구두지시로 결정됐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개성공단 폐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잘못됐다고 한 한·일 위안부 합의 때와는 딴판이다.

 

대북 전문가들은 2017년 12월 채택된 유엔의 마지막 대북제재(2397호)의 ‘사안별 면제 결정’(25조), ‘한반도·동북아 평화·안정 유지, 대화를 통한 해결 노력, 긴장완화 활동’을 환영·강조하는 조항(27조), ‘민주주의적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 기여 증진’을 목적으로 제재를 면제할 수 있는 미국의 대북제재강화법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개성공단 재가동은 국제사회의 이해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이 중단되고 남북·북미대화가 이뤄지고 있는 정세이고 보면 검토할 가치가 충분하다.

 

하지만 개성공단 담당부처인 통일부가 재가동의 활로를 뚫기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인 흔적은 찾기 어렵다. 통일부는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의 특수성을 앞세워 정책을 추진하는 조직이다. 당연히 국제사회와 결이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통일부는 ‘외교부보다도 더 미국 눈치를 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정부는 공장 시설을 점검하기 위한 기업인들의 방북조차 ‘가만 있으라’며 막고 있다. 공단폐쇄 이후 7차례, 문재인 정부 들어서만 4차례 방북 ‘불허’다. 통일부는 ‘국제사회의 이해부족’ 등을 이유로 들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요즘 설비에는 전자장치들이 많아 오래 세워놓으면 고장난다. 내 재산인 공장시설들이 온전한지 확인하는 것까지 막는 건 너무하지 않나.”(정기섭 위원장) 

 

야당의 행태도 이해할 수 없다. 자유한국당 방미단은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간담회에서 ‘북한의 제한적인 핵폐기 약속만 믿고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 재개 등 대가를 많이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기업인들의 고난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나올 수 없는 발언이다. 개성공단 문을 닫은 박근혜 정부의 여당으로서 일말의 책임감도 없어 보인다. 

 

다음주(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미국의 상응조치에 남북경협에 대한 제재완화가 포함될지가 최대 관심사다. 하지만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무위’로 끝난다면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인내심은 바닥날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치권이 개성공단 재가동을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국회가 초당적으로 ‘재가동 지지 결의안’을 채택할 필요도 있다. 이 정도 노력도 없이 미국의 제재완화를 기대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개성공단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대응은 향후 남북경협에 중요한 선례가 된다. 기업활동과 재산권이 침해당한 ‘불법 상태’를 바로잡는 노력도 제대로 하지 않고 기업인들에게 다시 ‘북으로 가라’고 권할 수 있을까. (2019년 2월21일자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