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여적]중국판 트로이 목마(2019.3.25)

서의동 2019. 8. 9. 23:33

빌헬름 2세가 제작의뢰한 황화도 출처 = 나무위키 

동양에 대한 유럽의 공포감은 훈족이 시원이다. “훈족은 모두 신체가 건장하고 강하며 목이 튼튼하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과 목마름에 견딜 수 있도록 훈련돼 있다.” 4세기 로마의 역사가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의 훈족에 대한 묘사다. 훈족은 말을 달리며 발 받침대인 등자를 딛고 서서 활을 쏘는 ‘신공’으로 로마군단을 농락했다. 5세기 전반 프랑스 중부 오를레앙까지 진출한 훈족의 왕 아틸라는 유럽에서 소설과 그림, 오페라, 조각 등으로 형상화되면서 동양에 대한 공포를 전승했다.

 

800년 뒤 유럽은 다시 몽골에 의해 유린됐다. 몽골군은 러시아를 두차례나 정벌한 뒤 오늘날의 폴란드와 헝가리, 루마니아를 공략하고 이탈리아에까지 진출했다. 칭기즈칸의 심복인 제베 장군은 2000명의 기마병으로 동유럽 10만 군대를 라이프니츠 들판에서 절멸시키기도 했다. 자신은 물론 말에게까지 쇠갑옷을 입힌 유럽 기병들은 안장조차 없이 말을 자유자재로 모는 몽골기병의 기동력을 당해낼 수 없었다. 몽골군의 원정은 유럽세계에 충격과 공포를 안겼고, 아틸라의 훈족과 함께 ‘황화(黃禍)’의 기원을 이룬다.

 

19세기 말 독일 제국의 빌헬름 2세가 주창한 황화론(Yellow Peril)은 다소 성격이 달랐다. 황인종이 유럽문명을 위협하므로 세계 활동무대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황화론은 청일전쟁 승리로 급부상한 일본을 견제하는 이데올로기였다. 그럼에도 훈족과 몽골에 대한 공포의 기억은 황화론이 먹혀들도록 했다. 황화론은 최근까지 여러 형태로 변주되면서 끈질기게 명맥을 유지해 왔다. 이슬람과 중국 문명권이 서구에 위협적이며 이들과의 충돌에 대비해야 한다는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도 황화론의 일종이다.

 

중국과 이탈리아가 이탈리아 트리에스테항과 제노바항 개발에 협력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하자 ‘황화론’이 나온다. 유럽 언론들은 이탈리아를 중국의 ‘트로이 목마’로까지 빗대면서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중국의 ‘일대일로’가 유럽 중심부까지 진출했으니 당혹감이 들 수도 있겠지만, 불필요한 인종주의와 배외주의로 이어져서는 안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유럽도 오랫동안 아시아인들에게 ‘백화(白禍)’이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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