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경향의 눈]설명 노력이 부족한 ‘문재인 외교’

서의동 2019. 11. 3. 22:17

2019.09.04

 

문재인 대통령이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하순 서울에서 열린 포럼에서 일본 정치인과 학자, 언론인들로부터 전해들은 일본의 현지 분위기는 예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휴가철에 만난 지역구 주민들이 한국 수출규제에 대해 ‘아베 정부 정책 중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며 ‘타협하지 말라’고 하더군요.”(자민당 의원) 일본 야당 의원은 “야당 지지자들조차 한국에 대한 감정이 나쁘다”고 했다. 일간지 논설위원은 “일본 정부가 삼성 등을 궁지에 몰아넣을 정도로 무리 수를 쓰지는 않겠지만, 일본이 피해를 보더라도 수출규제를 철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을 ‘아베 정권의 가장 잘한 일’로 꼽을 만큼 일본의 ‘반한’이 맹목(盲目)단계로 치닫고 있음을 확인했다.

 

한·일 갈등 두 달은 시중에 나와 있는 일본개론서를 다시 써야 할 만큼 일본의 낯선 얼굴이 드러난 시기였다. 고노 다로 외무상이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의 말을 중간에 자르며 ‘무례하다’고 면박한 것은 압권이다. 강제징용 가해 기업으로부터 압류한 자산의 현금화에 착수하기 전에 일본이 보복조치를 취한 것도 신중하다는 평소 이미지와 딴판이다. 판문점의 남·북·미 정상 회동에 세계의 시선이 쏠린 다음날 수출규제 카드를 던진 것은 ‘잔치에 재 뿌리자’는 심산이었을까. 국제사회로부터는 ‘오모테나시(진심 어린 환대)’라며 상찬받는 일본이 유독 한국에는 ‘다테마에(建前·표면적인 태도)’고 체면이고 다 집어던지며 달려드는 ‘다중인격’을 노출했다.

 

그래도 아베 정권의 속내는 어렴풋하게나마 가늠할 수 있다. 이번 갈등을 통해 한국에 대한 부채의식을 털어내고, 한국의 비중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2015년부터 외교청서의 한국 관련 기술을 단계적으로 격하시켜온 것을 보면 꽤 오래전부터 이런 그림을 그려온 것 같다. 북한을 대체할 외부위협으로 규정하는 것도 염두에 둔 듯하다. 국내 정치적으로는 장기집권의 피로감을 극복하고 일본인들에게 내셔널리즘의 옷을 입혀 헌법개정으로 나아가기 위한 ‘부품·소재’로 한국이 동원되는 인상이 짙다. 이건 한국이 정부 수립 초기 반일과 반공으로 국가정체성을 확립했던 것과도 흡사하다. 좀 더 큰 틀에서는 일본이 동북아에서 뛰쳐나와 인도·태평양 전략에 본격 가담하기 위한 정지작업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물론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자제하는 ‘냉온정지’ 상태가 조건이겠지만, 어찌됐건 아베 정부가 구상하는 새로운 지정학 질서에 ‘혐한’이 동원되고 있음은 확실해 보인다.

 

한·일 갈등 초기 한국의 대처는 평균점을 넘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경제보복이 ‘자유무역 질서’에 반하는 행위임을 국제사회에 환기시키며 명분을 쌓았고, 한편으로 대화하려는 자세를 견지했다. 시민들도 지혜롭게 대처하고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한·일 갈등 국면에서 한국 정부가 어떤 전략적 목표로 임하고 있는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상황에 대한 대응방안은 있지만, ‘갈등 이후’ 한·일관계에 대한 큰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대외전략과 외교정책 전체와의 연관성 속에서 대응방안을 짜온 것 같지도 않다. 한·일 갈등이 문재인 정부의 외교 목표인 한반도 평화구축과 충돌할 우려를 검토한 흔적도 안보인다. 한반도 평화구축에는 주변국의 협력과 지지가 필수적인데, 지금 상태로 일본의 지지를 이끌어내기란 불가능하다.

 

‘일본 리스크’는 사실 오래전부터 거론돼 왔음에도 정부는 이에 둔감했다. 정부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선언을 한 것은 최종 종료되는 11월 하순까지 양국이 집중력을 갖고 갈등을 해소하자는 협상 제안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면서 한·미 간 마찰로 번졌다. 물론 동맹 간에도 불협화음은 얼마든 나타날 수 있다. 한·미·일 3각 안보축으로 인도·태평양 전략을 짜려는 미국과 한·중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하는 한국이 GSOMIA에 입장차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한·미 간 마찰’ 자체가 아니라 ‘마찰 이후’의 대미외교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인지를 정부가 제대로 시사하지 않고 있는 점이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특수성 탓에 근·현대사에서 숱한 곡절을 겪어온 만큼 한국인들은 외교에 민감하다. 글로벌화가 진전되면서 외교와 국내정치의 경계도 희미해 졌다. 여론의 지지를 얻으려면 정부가 현재 정세와 대응방향, 외교전략의 큰 그림을 가능한 범위에서 설명하고 인식을 공유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된다. 듣기 귀찮을 정도로 외교당국자들이 발신해야 궁금증이 풀릴 수 있다. 국내 정치적 이익에 외교를 종속시킨다는 불필요한 오해가 더 이상 쌓여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