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여적]포털 종합상사(2021.3.4)

서의동 2021. 5. 25. 21:39

네이버 한성숙 대표. 경향DB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한창이던 1974년 일본의 세지마 류조(瀨島龍三·1911~2007) 이토추(伊藤忠)상사 회장이 방한해 이낙선 상공부 장관에게 ‘한국에서의 종합상사 설립에 대한 계획서’를 건넸다. 중소 섬유수출업체 이토추상사를 세계적인 종합상사로 성장시켜 ‘전설의 상사맨’으로 통하는 세지마는 한국이 ‘수출입국(立國)’을 하려면 종합상사를 만들라고 조언했다. 이듬해 정부는 상공부 고시로 종합상사 제도를 도입하고 대우실업, 삼성물산, 쌍용, 국제상사 등 7개사를 지정했다.

 

한국 종합상사의 역사는 곧 수출의 역사이다. 종합상사들은 정부의 각종 세제·금융 혜택을 받으며 빠르게 수출 주역으로 자리잡았다. 종합상사를 통한 한국의 수출비중은 1999년 51%에 달했다. 전체 수출액의 절반을 종합상사가 책임졌던 것이다. ‘사막에서 담요를 팔고, 북극에서 냉장고를 판다’는 상사맨들 무용담이 회자됐다. 통행금지 단속에 걸려도 “내일 아침 바이어를 만나야 한다”고 하면 풀려날 정도로 존중도 받았다. 출국이 어려운 시기 해외를 제집 드나들 듯하니 우수 인재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상사맨은 어학과 무역지식은 기본이고, 기획력, 순발력, 협상력, 도전정신이 두루 필요한 고난도 직업이기도 했다.

 

국내 대기업들이 자체 해외영업망을 구축하면서 2000년대 들어 무역분야에서 종합상사의 기세는 꺾였다. 대우인터내셔널을 모델로 한 종합상사 드라마 <미생>이 방영되던 2014년은 퇴조기를 한참 지난 시점이었다. 이후 종합상사들은 발전산업, 자원개발, 식량산업, 반제품 무역 등으로 활동반경을 넓혀갔다. 돈 되는 사업이면 무엇이든 발굴하는 종합상사 본연의 모습을 찾은 셈이다. 중소기업의 해외 판로개척에 나서는 종합상사들도 있다. 해외마케팅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들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포털기업 네이버가 국내 중소기업의 글로벌 시장진출 사업에 나서겠다고 지난 2일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동대문 패션이 일본 등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스마트 물류 솔루션’을 내놓기로 했다. 포털이 구축한 온라인 물류 네트워크를 활용해 중소상공인의 종합상사 노릇을 하겠다는 것이다. ‘포털 종합상사’ 실험의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