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일본 TPP의 격랑에

서의동 2011. 11. 10. 22:22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가 환태평양경제협정(TPP·이하 환태평양협정) 협상참가 여부를 하루 늦춰 11일에 결정하기로 했다.
노다 총리는 당초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 협상참가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야당은 물론 여당인 민주당의 반발이 예상외로 거세자 일단 시간을 벌기로 한 것이다. 노다는 이날 오후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정조회장, 다루토코 신지(樽床伸二) 간사장 대행과 가진 당정 3역 회의에서 “당내 의견을 확실하게 수용하고 내일 국회 심의를 거친 뒤 생각을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미·일 자유무역협정(FTA)인 환태평양협정 협상 참가 여부를 놓고 일본열도가 격랑에 휩싸이고 있다. 자민당과 공명당 등 야당은 물론 민주당 내에서도 반발이 커지면서 취임 두달만에 노다 총리가 위기를 맞고 있다. 의견수렴도 없이 서둘러 참가하려는 정부에 여론도 등을 돌리고 있다.
일본 정부는 환태평양협정 참가를 메이지(明治) 유신과 2차 세계대전 패전에 이은 ‘제3의 개국’이라고 부르며 국익 확대를 강조하고 있다. 관세철폐로 자동차, 전자제품, 정밀기기 등의 수출이 늘어나면서 국내총생산(GDP)이 10년간 2.7조엔(약 39조2000억원) 정도 증가할 것으로 정부는 설명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환태평양 협정 참가를 서두르는 진짜 이유는 미·일 관계 복원에 있다. 내년 재선에 도전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일본의 TPP 참가’라는 선물을 안겨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등의 문제로 서먹해진 관계를 반석 위에 올려놓겠다는 것이다. 그 선물을 오바마의 고향인 하와이에서 12~13일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장에서 내놓으면 효과가 극대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노다 내각이 이처럼 시한을 정해놓고 서두르면서 관련정보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는 데다 여론수렴이나 피해대책 논의도 더디게 이뤄지면서 여론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교도통신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환태평양협정 참가여부에 찬성(38%)과 반대(36%)가 엇비슷했으나 “정부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78%)는 응답이 압도적이었다. 
 
실익은 거의 없는데 피해는 뚜렷하게 보이는 협정이라는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경제산업성 관료출신의 나카노 다케시(中野剛志·40) 교토대 교수는 “미국은 자동자 관세가 2.5%에 불과해 철폐해도 별 실익이 없고, 현지생산 비율이 이미 절반을 넘는다”고 지적했다.
반면 현재 777%에 달하는 쌀 등의 수입관세가 철폐될 경우 농업부문이 적지 않은 타격을 입게 된다. 또 한국과 달리 일본은 내수비중이 높아 관세철폐의 경제효과가 크지 않은 반면 국내제도를 ‘미국 표준’으로 바꿔야 한다는 부담도 우려를 키우고 있다.
 
농민단체인 일본 전국농업협동조합중앙회(JA)와 소비자단체 회원 등 6000명은 지난 8일 도쿄도내에서 환태평양협정 참가 반대 집회를 가진 뒤 국회가 있는 나가타초(永田町) 거리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일본 의사회도 미국식 시장논리가 도입될 경우 공적의료보험이 붕괴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일단 결정을 늦췄지만 후지무라 오사무(藤村修) 관방장관은 “총리의 (TPP 참여) 방침에 변함이 없다”고 밝혀 참가결정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야권은 중의원 의원 232명의 서명을 받은 협상 참가 반대 결의안을 제출하는 등 실력행사에 나섰다. 민주당내 반대파들도 강경대응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어 노다 내각이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 
 

환태평양경제협정(TPP)는?
아시아·태평양 역내 무역자유화와 경제통합을 목적으로 하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이다. 2005년 6월 뉴질랜드와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 4개국간 협정으로 시작됐다. 2008년 미국이 참가하면서 이후 호주, 페루,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이 가세했다. 참가국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미국과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90%에 달해 사실상 미·일 FTA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