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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책] 편히 죽으려면 의료를 멀리하라

서의동 2012. 11. 10. 10:33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수액주사를 놓는다든지, 위에 튜브를 꽂아 무리하게 음식을 주입하는 식의 연명치료법이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보편적인 의료형태로 정착돼 있다. 유족들에게는 “그래도 손을 쓸 만큼 썼다”는 자족감을 주고, 병원으로서도 환자를 방치하지 않았다는 변명의 근거가 되지만 정작 환자들은 극심한 고통 속에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일본의 현직 의사가 연명치료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책을 냈다. ‘편히 죽으려면 의료를 멀리하라(大往生したけりゃ醫療とかかわるな)’(겐토샤)는 노인요양시설 부속병원에서 근무하며 수많은 임종을 지켜본 나카무라 진이치(中村仁一)가 자연의 섭리인 생로병사에 의료가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게 하는 부조리를 논박한다. 


저자의 주장은 이런 것이다. 의료의 발달로 인간은 스스로 보유하고 있는 자연치유 능력보다는 약과 병원에 더 의존하게 됐으며, 그 결과 더 큰 죽음의 고통을 맛보게 됐다. 죽음을 앞둔 노인들은 음식을 넘기지 못하는데, 이때 영양을 주입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면 아픔 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몸이 노쇠한 만큼 음식을 필요로 하지 않고, 목도 마르지 않는다. 죽음을 앞둔 순간에는 뇌 속에 몰핀과 비슷한 엔돌핀이 분비되면서 고통과 공포를 잊게 한다.


저자는 암에 대해서도 새로운 견해를 제시한다. 암의 조기발견보다는 손쓸 수 없는 ‘말기암’ 상태 때 발견되는 것이 차라리 환자에게는 행복하다는 것이다. ‘조기발견의 불행, 손쓸 수 없는 발견의 행복’이라는 상식을 뒤엎는 주장이지만 그가 예시한 사례를 보면 수긍이 간다. 


‘79세의 환자가 토혈 증세로 입원했다. 정밀검사 결과 위암 말기였고, 가족들은 적극적인 치료를 희망했으나 수술 대신 수혈하는 정도에서 상태를 지켜봤다. 그런데 해가 바뀌더니 환자의 변 색깔이 바뀌고, 식욕도 좋아졌다. 검사를 해보니 빈혈 증상도 거의 사라졌고, 8개월가량은 외출도 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물론 고통도 느끼지 않았다. 이후 점차 식욕이 떨어지면서 수족이 부어오르다가, 마지막에는 붓기도 빠진 채 ‘자연사’의 코스를 밟았다. 병원에선 길어야 2~3개월로 예상했지만 고통없이 1년 가까이 지내다 영면했다.’


또 다른 환자 역시 79세에 병원 검진에서 폐암이 발견되자 병원이 수술을 권했으나 거부한 채 병원과 인연을 끊었다. 하지만 고통이나 호흡곤란 증세를 느끼지 않은 채 4년3개월간 좋아하는 탁구도 치면서 노년생활을 보내다 세상을 떠났다. 역시 암 환자로서가 아니라 ‘자연사’의 코스를 밟은 것이다. 


저자는 암 조기발견을 위한 암 검진도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우선 암이 100% 발견된다는 보장이 없는 데다 과잉검사 및 치료를 유발한다. 내시경 검사 도중에 실수로 위에 구멍이 뚫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진단과정에서 암을 유발하거나 유전자 변이를 초래하는 방사선 피폭을 감수해야 한다. 암을 발견해 치료를 하더라도 완치가 어려울 뿐 아니라 맹독성의 항암제 치료를 지속하다 보면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세포까지도 손상돼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질 수 있다. 


이 책은 노인대국인 일본에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50만부 넘게 팔렸다. ‘암이라도 치료하지 않으면 아프지 않다’는 주장은 지나친 일반화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가 병원에서 임종을 맞는 ‘죽음의 방식’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은 유효하다. 평생을 환자들 곁을 지켜온 70대 노의사가 쓴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의 섭리인 죽음에 대해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