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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DB

방위비 분담금 공방으로 한·미동맹에 치장된 ‘신성(神聖)의 허울’이 벗겨진 것은 한국에 보약 같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아서 왕의 엑스칼리버 같은, ‘한국 수호’의 성검(聖劍)이었던 한·미동맹은 ‘사람들을 겁박해 돈을 뜯는 폭력배 식’(조 바이든 전 미국 부통령 발언) 계약관계로 전락했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사태는 미국의 동맹서열에서 한국이 일본에 멀찌감치 뒤처져 있는 현실을 체감케 했다. 그뿐인가. 기인(奇人)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됐을 때 사람들은 미국의 한반도 현상유지 정책이 바뀔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북한과의 2차례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뿐이다. 트럼프는 ‘나서지 말라’며 한국 정부의 손발을 묶어두고 1년 넘도록 ‘희망고문’만 가하고 있다. 실제로 일을 되게 하려는 건지, 시늉만 내고 있는 건지 그 속을 알 길이 없다. 이래저래 한·미동맹에 대한 피로감이 커지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이미 ‘제국’도 아니고, 제국이 속주(屬州)들에 베풀던 관용과 품위도 사라졌다. 이는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서 함께 피를 흘렸던 쿠르드 민족을 트럼프가 헌신짝처럼 팽개치는 것에서 극적으로 드러났다. 내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말고 다른 이가 권력을 잡더라도 미국 우선주의와 고립주의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더구나 중국이 세계 패권국가로 부상하면서 미·중 갈등은 ‘역사적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종합국력으로 따지면 미국이 절대 우위이니 전면대결 가능성은 낮지만, 국지적 갈등은 벌어질 것이고 그 사이에 끼인 나라들은 시달릴 것이다. 한국이 이미 2016년에 뼈아프게 경험한 일이다.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한반도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으로 한국 기업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은 채 중국땅을 떠났고, 관광·문화 산업도 타격이 컸다. 한국 정부는 2017년 ‘3불 정책’(사드 추가배치·미사일방어체제 가입·한미일 군사동맹을 하지 않겠다는 방침)으로 갈등 봉합에 나섰지만 냉기류는 그대로다. 한·중 간에는 이것 말고도 화웨이 규제, 동북아 중거리 미사일 배치 등 미국이 깔아둔 지뢰들이 있다. 홍콩사태에서 보듯 중국은 자국의 핵심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한국 외교는 앞으로도 험난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 실족하면 큰 부상을 입을 것이고, 간신히 중심을 잡더라도 국론 분열은 피할 수 없다. 강대국 눈치를 보느라 내 몸이 남아나질 않는다. 
 

그런데도 보수세력들은 한·미동맹을 만트라(주문)처럼 외워댄다. 한·미동맹이 외교의 지렛대인지, ‘한·미동맹 수호’가 외교 목표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다. 보수세력들의 이런 태도는 미국에 힘을 실어주고, 한국 정부가 운신할 폭을 좁힌다. 보수 언론들과 정치권은 미 행정부 관리들,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의 사소한 발언조차 확성기 틀 듯 증폭시키며 안보불안 심리를 키운다. 지난 수십년간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서 한·미동맹은 ‘성역’이 됐고, 한국인들의 외교적 상상력은 쪼그라들었다. 
 

보수세력들이 철석같이 매달려온 미국의 대통령은 요즘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친서를 주고받고 있다. 북·미 협상은 암운이 짙어졌지만, 트럼프의 행태로 볼 때 계산만 맞으면 쿠르드를 내치는 강도와 속도로 북한과도 거래할 수 있다. 반면 동맹국들을 향해서는 미국을 “벗겨 먹는다”고 한다.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결렬될 경우 주한미군 감축도 강행할 기세다. 미국은 2016년 한·일 양국에 GSOMIA 체결을 요구하면서 북한 핵·미사일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것으로 중국과는 무관하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GSOMIA의 만료로 득을 보는 곳은 중국과 북한”(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라고 말을 바꿨다. GSOMIA가 대중국 견제수단임을 자인한 것이자, 한·미동맹의 목표가 북한 견제에서 중국 견제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균형외교를 해야하는 한국의 처지는 안중에도 없다. 이쯤 되면 한·미동맹으로 인한 국익의 총합이 플러스인지 마이너스인지 제로베이스에서 따져보는 것이 마땅하다. 
 

트럼프는 한국인들이 한·미동맹을 객관화된 시각으로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했다. 동맹의 민낯이 드러난 이 시기를 외교전략과 한·미관계에 대한 재검토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미·중 패권경쟁 시대에 한국의 핵심이익을 정확히 규정하고, 그에 맞는 외교전략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지정학적 숙명을 ‘비동맹 중립’으로 해소한 나라들의 지혜도 활용할 필요가 있다. ‘가지 않은 길’이라도 국익에 맞는다면 과감하게 발을 디뎌야 한다. 한국인들이 미몽에서 깨어날 기회를 제공한 트럼프에게 감사인사라도 하고 싶다.

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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