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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글라이딩 도중 토네이도에 휩쓸려 북한 땅에 불시착한 여성 기업인 윤세리와 북한군 장교 리정혁이 사랑에 빠지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한국 드라마의 ‘운동장’을 넓혀 놨다. “일단 못 보던 광경이 풍물지적 흥미를 유발”한다는 평(대중문화평론가 황진미)대로 북한이라는 금단의 공간을 무대에 편입시킨 것이 우선 득점 포인트다. 북한군 장교, 그것도 군부서열 1위인 인민군 총정치국장의 아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설정도 전무후무하다. 상대는 재벌 2세인 여성 CEO. 남녀 주인공이 남북 체제의 파워집단 출신이라는 배역설정은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트집을 잡자면 주인공인 북한군 장교가  지나치게 멋진 것부터 용납 못하겠다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불온’해 보이는 드라마가 불시착은커녕 시청률 1위의 고공비행을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북한이란 공간과 분단의 현실을 멜로 판타지의 재미를 극대화하는 장치로 솜씨 있게 활용한 것이 시청자들의 호응을 받았기 때문이다.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가로막는 것은 남북 간에 놓인 장벽이다. 그런데 두 남녀는 나중에 장벽을 훌훌 넘어가 버린다. 한국 지형상 일어날 리 없는 거대 토네이도가 여주인공을 북한 땅에 데려다 놓은 것부터 드라마는 철저하게 판타지의 문법을 따라간다. 이 드라마에 국보법 시비를 거는 것은 그러므로 넌센스다.
 

판타지임에도 북한이란 배경화면을 초정밀 재현한 것도 미덕이다. 아랫동네(남한) 상품들이 공공연히 거래되는 장마당, 집마당 한쪽을 파내고 만든 저장고 ‘김치움’, 장시간 정차 중인 열차에 ‘메뚜기 장사꾼’들이 몰려드는 장면, 출연자들의 자연스러운 북한 사투리는 탈북인도 군말하지 않을 만큼 리얼하다. <응답하라 1988>을 재현한 듯한 전방부대 사택마을의 공동생활에서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는 중년들도 있을 것이다. 드라마는 북한 미화라는 우려가 쏙 들어가게 균형도 잘 잡는다. ‘꽃제비’가 등장하고, 전기는 수시로 나간다. 가정집을 숙박 검열하며, 거리에서 김일성 휘장을 달았는지를 불시 검문한다.
 

물론 ‘우리 민족’에 대한 정념(情念)을 안고 보는 이들도 없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개의 시청자들은 ‘말은 통하지만, 통행할 수는 없는 나라’가 어떻게 그려졌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기까지 하니 일거양득이다. 보수세력들이 아무리 북한의 위협을 공들여 강조해본들, 사람들은 북한을 이국(異國)취미를 만족시킬 ‘레어템’으로 소비할 준비가 돼 있다. 확실히 북한은 희소가치가 있는 ‘미개척 콘텐츠’이다.
 

<사랑의 불시착>의 흥행은 북한 관광에 대한 관심으로도 연결된다. 정부는 올 들어 북한 개별관광에 이례적으로 강한 추진의지를 보이고 있다. 통일부는 관광객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금강산·개성을 방문하는 개별관광, 중국 등 제3국을 경유한 관광 등을 검토 중이다. 어떤 방식이건, 일단 문이 열린다면 가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설 것이다. 사람들이 북한 개별관광에 흥미를 보이는 까닭은 <사랑의 불시착>이 인기를 얻는 이유와 동일하다. 그들이 ‘친북’이라서가 아니라, 북한이 식상하지 않은 관광지이기 때문이다.
 

보수진영은 북한 관광이 국제사회의 비핵화 전선을 흐트러뜨릴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고, 늘 그렇듯 미국도 견제하고 있다. 하지만 유엔의 대북제재 대상도 아닌 관광조차 정부가 풀지 못한다면 한국이 대북정책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비핵화가 이뤄질 때까지 차렷 자세로 미국 말만 듣고 있다간 남북교류는 영영 어려울 수도 있다. 한국인들이 관광을 안 간다고 비핵화가 앞당겨질 정도로 북핵 문제가 쉬운 일도 아니다.
 

“한반도 통일을 평화적으로 이뤄내려면 남과 북의 접촉을 늘리는 방법밖에 없다.”(1월18일 태영호 블로그)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는 북한 관광 자유화를 지지한다면서 “평양시에 배낭을 멘 한국 관광객들이 줄지어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이 뿌듯해진다”고 했다. 반북인사로 분류되는 그 역시 북한 관광에 찬성한 것은 이채롭지만, 상식적이다. 접촉하지 않으면 바뀔 수 없고, 바뀌지 않으면 통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북통일까지는 몰라도 평화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고, 미국이 깔아놓은 길만 고집할 이유도 없다. <오즈의 마법사>의 주인공 도로시처럼, 윤세리가 북한 땅을 밟은 것은 토네이도라는 기상이변 때문이다. 그런 이변 없이는 이웃나라에 갈 수 없는 현실은 바뀌어야 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북한 여행을 시작해 보자.

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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