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훌라걸스>의 제작자 이봉우 인터뷰

서의동 2011. 11. 1. 21:46
“쓰나미로 가족과 친구를 잃은 도호쿠(東北) 지방 주민들이 함께 영화를 관람하며 시름을 잊는 모습을 보며 ‘영화의 힘이 이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by/서의동

 

<박치기> <훌라걸스> 등 주목받는 일본 영화를 제작해온 재일동포 영화인 이봉우씨(51·사진·전 시네콰논 대표)는 1일 도쿄 지요다(千代田)구의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자 우선 도호쿠 지방 ‘이동영화관’ 이벤트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는 13t짜리 대형트럭에 영사기와 130명이 앉을 수 있는 간이 객석을 싣고 지난 9월부터 미야기(宮城)현 마쓰시마(松島)와 후쿠시마(福島)현 아이즈와카마쓰(會津若松) 등을 돌며 동일본 대지진 피해지 주민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있다.
 
“20년 동안 영화관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다는 이들이 쓰나미로 극장건물이고 뭐고 다 쓸려가 버린 폐허에서 영화를 관람하며 잠시 시름을 잊는 광경을 보면 이탈리아 영화 <시네마 천국>의 한 장면이 떠올라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그와 도호쿠 지방의 인연은 남다르다. 2006년 개봉돼 일본의 각종 영화상을 휩쓴 <훌라걸스>를 제작할 당시엔 후쿠시마현 이와키(いわき)시에서 석달 동안 머물며 2000명의 현지 엑스트라와 고락을 함께 했다. 지역경제 재건을 위해 훌라춤을 배우는 폐광촌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훌라걸스>는 이와키가 실제 배경이다. 많은 이들이 “도호쿠에 희망 메시지를 주는 내용으로 <훌라걸스> 속편을 만들라”고 제안하지만, 이씨는 “지금 희망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거짓말”이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TV에서는 도호쿠 주민들이 힘을 내고 있거나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고 떠들지만 실제 가보면 달라요. 입으로는 ‘힘낼게요’라고 하지만 뭘 해야 좋을지, 이곳에 살아도 되는 건지 고심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희망을 말하는 영화를 찍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과 똑같죠. 지금 영화는 그저 아픔을 잠시 가라앉히는 정도일 뿐입니다.”
 
몇 해 전 서울 명동에 일본 영화 전문상영관을 개관했다가 사기를 당해 회사까지 부도나는 아픔을 겪었던 그는 최근 본업인 영화 제작에 다시 손을 대고 있다. 도쿄 신주쿠(新宿) 거리의 동성애자들의 삶을 통해 일본 사회의 속살을 드러낸 영화 <에덴>을 내년 4월 일본에서 개봉할 계획이다. 주연에는 ‘탈원전’ 시위에 참여했다가 드라마 출연이 취소되고 소속사를 그만두는 수난을 당한 배우 야마모토 다로(山本太郞·36)를 기용했다. 기존 제작비의 3분의 1 수준인 7000만엔(약 10억원)의 저예산이지만 한국영화 <도가니>의 음악을 맡은 모그가 참여하는 등 ‘내공’을 갖춰 내년 2월 베를린영화제에도 출품할 예정이다.
 
1993년 <서편제>, 1999년 <쉬리>, 2001년 <공동경비구역 JSA> 등 한국영화를 수입해 일본 내 한류붐의 초석을 깐 그는 최근 일본의 한류열풍에 대해 “지금까지 잘해왔고, 어느 정도 일본 사회에 정착한 것 같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다만 일본 미디어들이 ‘한국은 선, 북한은 악’이라는 이분법 구도하에서 한류를 다루고 있어 총련계 재일동포들이 불편한 느낌을 받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대지진 이후 일본 사회에 대해 유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도호쿠 지방사람들이 이토록 고난을 겪고 있는데 나라의 지도층들에게서는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부흥을 위해 세금을 인상하겠다면서 총리가 월급을 반납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나라의 지도층이 도호쿠 주민들과 아픔을 함께 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 한 부흥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