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47

노년세대여 증세를 말하라

오이 시로(大井四郞·88)는 지난해 여름 집에서 열사병으로 쓰러진 이후 공공 노인시설에서 머물고 있다. 자녀가 없는 데다 아내가 6년 전 세상을 떠난 이후 급격히 쇠잔해져 집에 돌아갈 수도 없다. 그가 매달 받는 연금은 6만5000엔. 이 돈으로 지낼 수 있는 곳은 특별노인요양시설 뿐이지만 포화상태여서 3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런 탓에 넉달간 3군데의 단기 입소시설을 전전했다. 입주자들과 얼굴을 익힐만 하면 거처를 옮겨야 하는 신세다. 최근 방영된 NHK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노인천국’ 쯤으로 여겨지던 일본에서도 노인문제가 방치하기 어려운 수준임을 일깨웠다. 일본은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자수가 3000만명을 넘어섰다. 유복한 노년을 즐기고 있는 65세 전후의 ‘단카이(團塊)세대’야 별 문제 없지만 ..

칼럼 2013.01.24

'레트로' 아베노믹스

섣달 그믐날 저녁 일본의 ‘국민 프로그램’인 NHK 홍백가합전에서는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일본유신회 대표의 동생이자 작고한지 25년이 지난 요즘에도 ‘국민 스타’로 추앙받는 유지로(裕次郞)가 드럼을 연주하는 흑백화면이 방영됐다. 1989년에 작고한 일본 여가수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의 추모콘서트는 매년 수많은 팬들이 한곳에 모여 그의 생전 영상을 지켜보며 추모하는, 극히 단순한 행사인데도 지상파 방송이 실황중계까지 한다. 일본의 TV는 철을 가리지 않고 ‘비장(秘藏)영상 대방출’ 따위의 제목으로 옛날 연예인들의 화면을 자주 내보낸다. 회고·추억이란 영어 단어 ‘레트로스펙트(retrospect)’의 준말인 레트로는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거나 과거의 체제·전통을 그리워하며 본뜨려는 현상을 가리킨다...

칼럼 2013.01.03

개운찮은 재외국민 투표

재외국민 대통령 선거 마지막날인 지난 10일 오후 일본 도쿄 주일한국대사관 내 투표장에서 만난 60대 재일동포 2세 여성들은 난생 처음 투표를 했다는 감격에 다소 얼굴이 상기돼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어떤 기준으로 투표를 했느냐고 묻자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주변에서 좋다는 후보를 찍었지요. 한국말도 잘 모르고 하니….” “일본 신문에 난 선거기사를 봤지만 역시 정보가 부족했어요.”한 여성은 “투표권을 줘서 좋긴 하지만 한국사정도 모르고, 세금도 내지 않는 데 투표를 해도 되는 건지…”라며 개운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나이든 동포들도 그렇지만 투표에 적극적인 젊은 층도 후보 선택에 참고할 만한 정보에 목말라했다. 출판사에 근무하는 40대의 재일동포 3세 남성은 “선거공보물을 일본어로 배포한 후보가 민..

칼럼 2012.12.13

센카쿠가 삼켜버린 탈원전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이 지난 17일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전 도쿄도 지사와 당을 합치기로 하면서 그간 주장해온 ‘탈원전’ 정책을 공약에서 제외한 것은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이는 다음달 16일 열리는 일본 중의원(하원) 총선에서 탈원전 이슈가 더 이상 승패를 가르는 쟁점이 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계산 빠른 하시모토는 탈원전에 매달리는 것보다 영토문제 등에 초강경 태도를 보이는 이시하라와 손잡는 것이 총선득표에 더 플러스가 되리라고 판단했을 것이 틀림없다. 올해의 일본을 되돌아보면 묘하게도 탈원전 이슈가 표출된 뒤 영토문제에 불거지곤 했다. 우선 이시하라가 지난 4월16일(현지시간) 미국 헤리티지 재단의 초청으로 방미해 워싱턴을 방문한 자리에서 “민간인이 소유한 센..

칼럼 2012.11.22

한일 현안대책위 구성을

도쿄대학 부근 혼고산초메(本鄕三町目)의 초밥집에서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와 마주앉은 것은 보름 전쯤의 일이다. 영토문제에 관해 새로 쓴 저서를 받을 겸 만난 자리에서 선생은 시종 한·일 관계의 미래에 대해 우려했다. 그 얼마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극우파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당선된 것이 양국관계에 미칠 영향도 화제에 올랐다. 와다 선생은 한반도 문제에 정통한 전문가이자, 한국의 민주화와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해 진력해온 실천가이다. “만약 자민당이 정권을 탈환해 아베 총재가 총리가 되면 한·일 관계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노다 정부가 한국으로선 맘에 들지 않겠지만 그래도 민주당 정권이 있는 동안에 양국관계 회복의 실마리를 만들어야 한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내각은 정..

칼럼 2012.11.01

일본의 저열한 위안부 인식

일본 정부는 1945년 8월15일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지 3일 만에 미군을 상대로 하는 위안소 설치에 착수했다. 일본의 작가 겸 역사가인 한도 가즈토시(半藤一利)가 쓴 는 이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일본 내 치안 최고책임자인 내무성 경비국장이 8월18일 점령군을 위한 ‘서비스 걸’을 모집하라는 행정명령을 각 지방에 내려보냈다. 당시 재무관료로 후일 총리가 되는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가 “(위안시설 조성에) 얼마나 필요한가”라고 묻자, 특수위안시설협회 간부가 “1억엔 정도”라고 답변했다. 이케다는 “1억엔으로 (나머지 여성들의) 순결이 지켜진다면 비싼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나라를 이끄는 핵심관료들이 점령군의 진주에 대비해 위안부 시설을 솔선해서 만드는 전대미문의 광경이다. 일화를 접하면..

칼럼 2012.10.11

노다 총리의 오판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는 오판했다. 지난 9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일본은 잘못된 결정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한 것을 귀담아듣지 않은 것이다. 후진타오가 경고를 한 다음날 노다 총리는 각료회의를 열어 센카쿠 열도 3개 섬의 국유화를 결정했다. 외무성의 일부 간부들이 “국유화는 조금 기다렸다 하자”며 충고했지만 노다 총리는 듣지 않았다. 국가주석의 체면이 구겨진 중국은 무섭게 화를 내고 있고,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은 일본은 속수무책으로 중국의 노기가 가라앉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일본의 외교라인은 중국의 본심을 읽는 데 실패했다. 이토추(伊藤忠)상사 회장을 지낸 친중파 니와 우이치로(丹羽宇一郞) 주중 일본대사를 ‘이지메’할 때부터 대중국 라인은..

칼럼 2012.09.20

재일 한인사회에 몰아친 '후폭풍'

“마치 세입자가 집주인 눈치를 보는 기분입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꽤 심각했다. 일본에 온 지 30년이 다 돼 가는 이 한국인 사업가는 한·일 갈등이 본격화된 이후 일본 고객들을 상대할 때 괜한 위축감이 든다고 했다. “한 일본인은 내게 ‘테러를 조심하라’고 합디다. 물론 친하니까 그런 이야기를 했을 거라고 좋게 생각하려 해도 찜찜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사회 분위기에 민감한 일본인들이 앞으로 대놓고 한류 콘서트장을 찾을 수 있겠어요? 신오쿠보의 코리안타운에서 우익들이 시위를 벌이면서 한류팬들에게 노골적으로 압력을 가하는 걸 보면 한류붐이 빠르게 식을까 걱정됩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과 요구 발언이 촉발한 한·일 갈등이 일본의 한인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칼럼 2012.08.30

이지메 피해자가 전학가는 일본

그의 팔뚝에는 담배로 지진 20여개의 벌건 흉터가 남아있었다. 줄을 맞춘 듯 가지런한 흉터자국이 보는 이들을 더 섬뜩하게 한다. 일본 센다이(仙台)에 사는 이 고교생이 동급생들로부터 이지메(집단 따돌림)를 당한 사실을 알게 된 부모가 학교를 찾아갔으나 학교 측은 되레 학생의 퇴학을 권했다. “흉터를 다른 학생들에게 보여줘 심적 동요를 유발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왜 피해자가 학교를 그만둬야 하느냐”며 학부모가 고성을 지르는 장면이 얼마 전 일본 방송의 뉴스화면에 비쳤다. 도쿄의 중학교 2년생은 지난해 5월부터 동급생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해오다 늑골이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었지만 결국 지난 3월 학교를 옮겨야 했다. 이지메 문제는 한국도 일본 못지않게 심각하지만 일본의 대처방식은 꽤 독특하다. 이지메 가해..

칼럼 2012.08.09

이지메와 와(和)

그의 팔뚝에는 담배로 지져진 20여개의 벌건 흉터가 남아있었다. 줄을 맞춘 듯 가지런한 흉터자국이 보는 이들을 더 섬뜩하게 한다. 일본 센다이(仙台)에 사는 이 고교생이 동급생들로부터 이지메를 당한 사실을 알게 된 부모가 학교를 찾아갔으나 학교 측은 되레 학생의 퇴학을 권했다. “흉터를 다른 학생들에게 보여줘 심적 동요를 유발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왜 피해자가 학교를 그만둬야 하느냐”며 학부모가 고성을 지르는 장면이 얼마 전 일본 방송의 뉴스화면에 비쳤다. 도쿄의 중학교 2년생은 지난해 5월부터 동급생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해오다 늑골이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었지만 결국 지난 3월 학교를 옮겨야 했다. 이지메(집단 따돌림) 문제는 한국도 일본 못지 않게 심각하지만 일본의 대처방식은 꽤 독특하다. 이지메 ..

칼럼 2012.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