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00년만에 돌아온 이웃

서의동 2011. 10. 21. 21:10
블로그에 서울과 도쿄의 거리를 비교하는 글을 올렸더니 호된 비판 댓글이 달렸다.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공존토록 하는 ‘분연(分煙)’의 발상이나, 페트병, 알루미늄캔과 일반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리도록 돼 있는 일본 거리의 시스템은 우리도 참고할 만하다는 내용인데, 댓글은 ‘어디 비교할 데가 없어 서울을 도쿄에다 비교하느냐’는 반응이었다.

한일 대학생 문화교류 행사/부경대 홈페이지



일본 연수를 다녀온 뒤 주변에 생각없이 일본 칭찬을 늘어놓다 “1년만에 친일파가 됐다”고 한방 먹었던 몇년전 기억도 잠시 떠올랐다. 하지만 공감한다는 댓글이 좀더 많은 걸 보면 일본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시선에 여유가 느껴지기도 한다.
 
요즘 한·일 관계에서 조바심을 내는 쪽은 일본이다. 최근 일본 신문에 실린 한 칼럼은 인상적이다. 이 신문의 서울특파원은 “한국에서 일본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있다”고 썼다. ‘일본인 대환영’이라고 써붙여 놓은 식당에 들어갔더니 일본인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 벽에는 독도사진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일본사정을 잘 알 법한 대한항공이 새 항공기 취항기념으로 독도를 시험운항한 사건도 그에겐 당혹스러웠던 모양이다. 자민당 의원들의 울릉도 방문시도에 흥분하며 광복절에 독도에 가겠노라고 큰소리치던 여야 대표들이 날씨를 이유로 취소한다. 하지만 김포공항에서 관을 메고 일본규탄 시위를 벌이던 이들조차 항의하지 않는다. 
 
이 기묘하고도 수상쩍은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한국이 일본이나 한·일관계를 ‘가벼운 화젯거리’ 정도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결론지었다. 
 
‘일본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그의 글에 특별히 기분나쁠 이유는 없다. 일본이라면 왠지 주눅들고, 그래서 더 목청을 높여야 하던 ‘대일 조울증’에서 우리가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 아닌가. 돌이켜 보면 일본은 36년간의 식민지배 뿐 아니라 해방이후에도 한동안 한국 사회에 영향을 미쳤다. 주로 나쁜 쪽이었다. 한국사회에서 일본에 대한 태도는 좌우 이데올로기에 우선하는 검열잣대가 됐다. 조금 호의적이다 싶으면 가차없는 비판이 날아왔고, 정치인들에겐 치명타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이 20년이 넘는 장기침체에 정치·외교마저 왜소증에 걸리면서 분위기는 바뀌고 있다. 중국의 기세에 놀란 일본은 뒤늦게 한국의 옷소매를 움켜쥐려 하고 있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가 취임후 첫 공식방문국으로 한국을 택한 데는 이런 조바심이 작용했다. 아시아를 밀치고 ‘탈아입구(脫亞入歐)’의 길을 떠났던 일본이 기가 꺾여 돌아와 이웃들의 눈치를 살피는 광경이다. 
 
최근 만난 외무성 관료는 “한국은 아시아에서 일본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라고 말했다. 최상급에 복수형이 있는 영어식 표현처럼 ‘가장 중요한 파트너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파트너’라는 설명이다.    
 
반면 한국 사회는 대일 증오감을 과도하게 부추기는 사회·정치 일각의 액션에 선을 그을 정도로 여유를 갖게 됐다. 동일본대지진 직후 일었던 전례없는 모금열풍은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독도는 일본땅’ 교과서로 주춤했지만 모금행렬은 끊기지 않았다. 인터넷 공간이나 일부 정치권에 등장하는 하이톤의 대일비난을 평균적인 여론으로 간주할 상황은 지난 것 같다. 물론 일본이 삐딱하게 변할 가능성이나 미해결의 과거사 문제는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제야말로 묵은 감정을 털어내고 일본을 허물없는 이웃으로 대할 시점이 된 것 아닐까. ‘일본에서 손톱만큼도 배울 게 없다’는 생각은 그다지 실용적이지 않다. 이웃간에 정을 주고받듯 그들이 장점을 골라 섭취하는 것은 어떨까. 100년이 넘도록 이웃다운 이웃이 없어 서툴 수도 있겠지만, 그건 일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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